Page 265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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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망념이 떨어지고 나서 진여를 증득하게 된
다고 본다면 이것은 순차적인 입장이다. 이 경우, 무념은 과정이 되고
증득할 진여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에 비해 무념의 성취와 진여의 증득이 함께 일어난다는 동시적 입
장도 있다. 이 경우, 구경의 무심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진여라는 말이
된다. 성철스님은 동시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구경의 무심은 진여와
의 완전한 계합과 동의어가 된다는 것이다. 구경무심의 성취와 깨달음
의 성취가 동시적인 사건이라면 이 둘은 서로의 완전성을 상호 증명하
게 된다. 구경무심이므로 깨달음이 완전하고, 깨달음이므로 무심이 완
전하다. 성철스님이 돈오원각과 구경무심의 성취에 모든 법문의 핵심을
집중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유식의 설을 적극 채용하면서도 전식득지
대신 아뢰야식의 3세 타파를 거듭 강조한 것도 그 점진성 대신 동시성
과 완전성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성철스님은 무념을 먼저 말하고, 6조스님은 견성을 먼저
말한다. 차이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6조스님은 “이 법을 깨달은 자는
즉시 무념이다.”(【6-1】)라고 한 데 대해 성철스님은 “이 무념이 즉 무생이
니 즉 돈오이며 견성이며 성불이다.”라고 설명한다. 또 “진실하고 바른
반야관조가 일어나면 찰나간에 망념이 모두 사라진다.”(【6-6】)라는 6조
스님의 말에 대해 성철스님은 “망념이 구멸俱滅하면 자성을 명견明見하
고”로 먼저 무념을 말한다.
이것은 흥미로운 차이일 수 있다. 6조스님은 분명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일(머무는 바 없이 마음이 나는 일)’을 깨달아, 먼지(塵埃)와 밝은
거울(明鏡)이라는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자리에 도달했다. 이것이 반야
관조이다. 선악조차 가르지 않는 이러한 비춤에서 보면 먼지도 거울도
모두 진여이기 때문이다. 망념 자체가 진여의 드러남이므로 망념을 일
제6장 무념정종 · 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