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0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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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닦으면 생각이 끊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자리가 있기는 하다. 그 순간

            일체의 번뇌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이 끊어졌
            다 해서 자아의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돌에 눌려 있던 풀

            처럼 잠시 눌렸다가 더 강한 기세로 부활한다. 자아의식이 이 정도이니
            그 깊은 뿌리인 근본무명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더구나 생각을 끊겠다는 의지 자체가 시비분별과 취사선택을 내용으
            로 하는 번뇌의 일종이다. 그러므로 6조스님이 말하는 무념의 법은 생

            각을 끊겠다는 의지 자체까지 내려놓는 일이다. 의지 자체를 내려놓는
            일이므로 이 무념은 만 가지 현상에 걸림이 없다. 일체의 분별과 시비

            호오를 내려놓고 보면 만 가지 현상이 모두 한마음이다. 동서남북으로
            나뉜 공간의 방위 개념을 내려놓고 보면 모두가 허공인 것과 같은 이치

            이다.
               이렇게 일체의 분별과 집착이 사라진 자리가 곧 부처의 경계이다. 그

            래서 무념의 법을 깨달은 사람은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부처로서 산
            다. 그에게는 불법이라 할 특별한 것이 따로 없다. 지금의 모든 것이 그

            대로 불법이기 때문이다. 부처의 마음으로 보므로 모든 것이 부처의 살
            림인 것이다.

               모든 깨달음은 분별의 생각이 무너지는 사건과 동시에 일어난다. 분
            별이 무너지는 순간,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아니고, 너는 너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와 대상의 구분
            을 남김없이 내려놓고 보면 큰 부활이 일어난다. 그리하여 산하대지가

            한결같이 부처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이 작용 또한 부처의 일
            일 뿐이다. 진정한 무심은 이렇게 모든 것에 대한 절대 부정과 절대 긍

            정이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크게 죽어 크게 되살아나는 일이다.
            그리하여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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