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4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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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히 드러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깨달음 뒤에 닦는 수행이므
로 깨달음 이후의 보호와 맡겨 둠(悟後保任), 혹은 깨달음 이후의 닦음
(悟後修行)이라 부르기도 한다. 보임이 중요한 이유는 해오의 눈뜸에 도
취되어 수행에 느슨해지면 다시 미혹해지는(悟後迷) 일이 일어날 수 있
기 때문이다.
2. 성철스님 보임무심 설법의 특징
성철스님은 앞에서 말한 바 보임의 두 의미 중에서 맡겨 두는 측면
만 인정하고 보호하는 측면은 부정한다. 보호하고 지킬 것이 있다면 진
정한 깨달음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이다. 성철스님은 돈오점수를 이단사
설로 규정한다. 따라서 깨달은 뒤 남아 있는 습관의 관성과 미세한 번
뇌를 차근차근 제거해 가는 것이 보임이라는 설을 수용할 수 없다.
원래 성철스님의 모든 설법은 견성이 바로 무상정각이라는 돈오원각
론을 핵심으로 한다. 일념불생의 진정한 무심, 제8아뢰야식의 근본무
명까지 완전히 끊어버린 대무심경계를 철저히 증득한 것이 견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견성 이후 아직 닦아내야 할 습관의 관성이나 번뇌망
상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잘못일 뿐더러 그것을 보임이라 한다면 더더
구나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성철스님에게 보임은 중요하다. 『선문정로』 전체 19장 중 가
장 자세한 견해를 피력한 것이 바로 견성즉불과 보임무심의 두 장이라
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견성즉불은 제1장이자 전체 종
지를 드러내는 장이므로 그것이 자세하게 설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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