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9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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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적인 선행을 쌓아나가는 일(事上修善)’을 점수라 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철스님은 전통적인 보임의 설법 중 보살행의 측면을 적극 수용
             한다. 이를 통해 깨달음 이후 자유로운 삶을 자처하면서 수행에 느슨해

             지거나 막행막식으로 떨어지는 길을 차단하였다. 그러니까 성철스님에
             게 진정한 보살행은 깨달음 이후의 일이었던 것이다.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강조하는 돈오원각론은 성
             철선의 주된 종지이다. 선종은 중국 불교를 찬란하게 꽃피운 축복이었

             지만 그 말류의 폐해 또한 적지 않았다. 이들은 평상심이 그대로 도(平
             常心是道)라는 마조스님의 말을 빌려 옷 입고 밥 먹는 모든 일 그대로 부

             처의 길이라 보았다. 그래서 이들이 보기에 수행을 한다는 것이 오히려
             스스로 미망에 빠져 있다는 증거일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남

             종선의 대선사들이 보여준 파격적 행위가 그 깨달음의 증거로 찬양되
             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부처를 태우는 단하천연스님과 같이 틀을 뛰

             어넘는 장부다운 행위가 있기 위해서는 분명한 전제가 필요하다. 그것
             이 진정한 깨달음에서 나오는 행위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

             면 그것은 파계이고 타락일 뿐이다.
                수행의 부정은 대부분 본래 깨달음(本覺)의 이치에 대한 오해에서 비

             롯된다. 모든 중생은 불성을 갖춘 존재이고, 보다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이미 완전한 존재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부처이다. 처음에는 이것을 알

             지 못하여 중생과 부처를 둘로 나누어 이원적으로 이해한다(不覺). 이것
             은 마치 조상들의 보물이 감춰진 집에 사는 가난한 후손과 같다. 사실

             은 부자이지만 스스로 이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선지식을
             만나 본래의 천진불에 대해, 본래의 깨달음에 대해 강력한 가르침을 받

             는다. 그것은 수행자의 전 존재를 뒤흔드는 체험이 된다. 불교의 실천
             은 이것을 진정으로 믿는 데서 시작된다. 만약 이 진리를 듣고 완벽하




                                                            제7장 보임무심 ·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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