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5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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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해 보임무심이 압도적인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는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보임무심장을 시작하는 처음의 두 인용문이 보

             임이 아니라 견성에 대한 설법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핵
             심은 본래면목을 철증하면 미래겁이 다하도록 자재무애한 대휴헐지大休

             歇地에 도달하며, 그 열반묘심은 천만년이 다하여도 변이가 없다는 데
             있다. 바로 이것이 견성이므로, 이후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더 견고

             히 하는 것이 보임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더 견고해지거나 다시
             미약해질 것이 없는 것이 견성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성취했으니 다

             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참다운 보임이란 깨
             달음 이후의 안락하고 자재한 생활을 이어나가는 일이 된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심지어 성철스님이 널리 인용
             한 원오스님의 설법에도 ‘간절히 조심하라’는 말이 보인다. 예컨대 견성

             을 정의하기 위해 예로 든 【7-1】의 인용문을 보면 “한 번 증득하면 영
             원히 증득하여 미래제가 다하도록 망실亡失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의 뒤

             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생략되어 있다.


                소소한 득실과 시비, 영광과 쇠퇴, 고요함과 시끄러움 같은 것들은

                그냥 잘라내 버려라. 잘 잡도리하면서 주인공의 자리에서 오래 길러
                나가노라면 한 마음도 생겨나지 않아 만 가지 현상에 잘못이 없게
                될 것이다. 다만 자아의 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간절히 조심하라.
                대상과 나의 구분에 떨어져 애증이 생기게 되어 말끔하게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이렇게 성인의 태아를 오래 길러
                                                167
                가는 것(長養聖胎)이 진정한 수행이다.


              167   佛果克勤禪師心要』(X69, p.477c), “至於小小得失是非榮枯寂亂, 直下截斷, 把得
                 『


                                                            제7장 보임무심 ·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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