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7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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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뿐입니다. 설사 복잡한 시정에 산다 해도 산속이나 숲속과 같
아 애초에 두 가지로 나누는 견해가 없습니다. 설사 연화좌에 앉게
되어도 기쁜 마음이 일지 않으며, 구천지하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싫
어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만나는 곳마다 세운다 해도 또
한 취하여 얻는 차원의 일이 됩니다. 그러니 그것이 나에게 무슨 의
미가 있겠습니까? 168
성철스님의 견해와 완전히 일치한다. 그러면서도 ‘간절히 조심하라’고
경계하는 경고의 문구가 보이는 문장이기도 하다. 성철스님은 서슴없이
이것을 생략해 버린다.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성철스님은 옛
선지식들의 말을 인용하되 취하고 버림이 자유롭다. 그것은 스스로의
닦음과 깨달음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반드시 보임이 궁극적 무심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자
재한 삶이라야 할까? 구경무심의 대원각에 이르기 전까지 수행의 고
삐를 늦추지 말라는 의도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돈오점수론에서도
깨달음 이후 그것을 견고히 하는 보임수행을 통해 구경각을 향한 수행
을 멈추지 않도록 가르친다. 구경각에 이르기까지 수행을 내려놓지 않
는다는 점에서 성철스님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왜 구경무심이라야 할까? 성철스님은 여기에 두 가지 이유
를 내놓는다. 첫째는 유심에서 무심으로 건너가는 데 넘기 힘든 단층
『
168 圓悟佛果禪師語錄』(T47, pp.784a-784b), “況透脫死生窮未來際, 一得永得當深
固根本. 根本旣固, 枝葉不得不欝茂. 但於一切時令長在, 勿使走作, 湛湛澄澄吞
爍群象, 四大六根皆家具爾, 況知見語言解會耶. 一時到底放下, 到至實平常大安
穩處, 了無纖芥可得, 只恁隨處輕安眞無心道人也. 保任此無心究竟佛亦不存, 喚
甚作衆生菩提亦不立, 喚甚作煩惱翛然永脫. 應時納祐, 遇茶喫茶遇飯喫飯, 縱處
闤闠如山林, 初無二種見. 假使致之蓮華座上, 亦不生忻, 抑之九泉之下, 亦不起
厭, 隨處建立又是贏得邊事, 何有於我哉.”
제7장 보임무심 · 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