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6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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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는 성철스님의 자기모순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성철스님이 돈頓을

            역설하면서 온통 점漸의 구도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점漸의 구도를 도입하는 의도가 돈頓의 표명에 있다는 점

            은 분명해 보인다. 더구나 성철스님은 오로지 숙면시에 항일한 마지막
            관문이 있고, 그것조차 타파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

            해 이러한 기준들을 말한 것이다. 그 각각의 단계에 어떤 특별한 의미
            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

               유식적 관점에서 볼 때, 숙면시에 항일한 오매일여는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멸진정에 도달한 여래와 자재보살에게는 수면과 혼절(悶絶)이

            없다는 『성유식론』의 문장이 고려되어야 한다. 혼절은 기절했다는 뜻이
            다. 숨을 쉬고 있을 뿐 분별의식이 작동하지 않는다. 숙면 상태 역시 마

            찬가지다. 자재보살과 여래는 겉으로 보면 잠을 자는 것 같아도 실제로
            는 선정이 지속되고 있으므로 오직 멸진정의 선정만 있을 뿐, 수면과

            혼절이 없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8지 이상의 자재보살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자재보살은

            아뢰야식의 3세가 남아 있는 가짜 무심(假無心)의 상태에 있으므로 진짜
            오매일여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한 오매일여는 구경의 무심에서만 가

            능하며 이것이 여래의 차원이라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숙면시에 항일한 오매일여가 실경계 체험임을 거듭 강조

            한다. 그것이 불이론의 이론적 천명이 아니라 실제 수행자가 체험하는
            경계라는 것이다. 이것을 체험하지 못했다면 아직 깨달음의 입구에조차

            도달하지 못했음을 알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돈오점수론의 입장에서 깨달음은 진정한 수행의 출발이

            된다. 성문4과로 불리는 수행의 계위설에서는 수다원이라는 견도위見
            道位, 사다함과 아나함이라는 수도위修道位를 거쳐 아라한이라는 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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