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7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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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無學位에 도달한다. 돈오점수의 돈오→점수→구경각은 이러한 구도와

             닮아 있다.
                그런데 부처님은 외도外道를 따라 수행하면서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의 선정을 체험했지만 그것을 깨달음으로 인정
             하지 않았다. 그것이 높은 차원이기는 하다. 그래서 부처님의 수행을

             이끌었던 스승들이 그 깨달음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부처님이 보기에
             그것은 보다 고급의 욕망을 추구하는 일일 뿐이었다. 그것으로는 결코

             생사윤회를 넘는 결정적 계기가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추구하는 마음
             이 남아 있는 한 그것은 물에 젖은 나무와 같아서 불을 붙일 수 없는

             것과 같다. 바짝 마른 나무가 필요하다. 바짝 마른 나무란 무엇인가?
             일체의 욕망을 내려놓아 추구하는 바가 없는 마음, 바로 진정한 무심無

             心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모든 추구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좌선에 들어가

             4선정과 6신통을 고루 성취하고 마지막에 누진통을 얻어 깨달음을 완
             성한다. 이에 부처님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의 성취를 선언한다. 그런

             데 이렇게 정리된 부처님의 생애는 4선8정을 인정한 것일까, 부정한 것
             일까? 중요한 것은 4선8정이 부처님에게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추구가 없었다는 점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4선8정은 물론 깨달음에 대
             한 추구를 내려놓음으로써 그것을 완성하였다.

                깨달음은 수행의 끝에 일어나는 구경의 궁극적 사건 이외의 다른 것
             이 될 수 없다는 성철스님의 입장은 이러한 부처님의 구경무심에 대한

             완전한 공감을 토대로 한다. 그러니까 성철스님의 이 관문은 성문4과
             나 3현10성, 등각, 묘각의 보살 지위와 같이 그 의미를 인정하는 차원

             에서 제시된 것이 아니다. 관문은 통과하는 것이지 도달하는 것이 아니
             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교가의 지위점차를 비판하면서 스스로 지




                                                             제8장 오매일여 ·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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