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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원오스님이나 대혜스님이 오매일여의 항일한 상태를 설정
하는 일을 분별망상으로 규정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그 주장의 근거는
이렇다. 대혜스님이 수면할 때 캄캄하여 주인이 되지 못함을 탄식하며
오매일여에 대해 질문한다. 이에 원오스님이 “그만하고 그만하라. 망상
을 쉬고 쉬어라.”, “망상이 단절될 때 오매항일처에 도달하리라.”고 대답
한다. 이를 통해 원오스님이 오매항일을 망상이라 규정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선가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따라가서는 핵심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것은 오직 번뜩이는 만남의 현장에서 밝은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
한 방향타일 뿐이다. 스승에게 제자가 찾아와서 묻는다. “깨달음은 어
떻게 얻습니까?” 그러면 스승은 십중팔구 깨달음과 미혹함을 가르는
그 망상을 쉬도록 수단을 쓴다. 망상을 깨기 위해서라면 “깨달음은 없
다.”라는 극단적 대답도 서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말에 근거하여 깨
달음은 없다고 할 것인가? 오매일여를 묻는 대혜스님의 질문에 망상을
쉬라고 대답한 원오스님의 경우가 그렇다.
흥미로운 것은 오매일여를 불이론이나 화두참구의 상태에 대한 일종
의 상징적 표현, 철학적 원칙론의 천명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실참수행을 통한 실오로서의 증오란 옛 불조들의 가르침이 진여실상과
그대로 하나임을 확인하는 사건이다. 거기에는 언어적, 의식적 이해의
과정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 불조의 말에 대한 궁극적 동의는 지금까지
의 이해가 결국은 2% 부족한 오해였음을 깨닫는 일과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숙면시에 항일한 오매일여가 과연 실천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 나아가 그것이 간화선에는 적
용되지 않는 다른 수행법의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오매일여에 대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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