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2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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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적이 먼저 얘기된다. 고요함, 멈춤, 선정을 먼저 성취해야 한다는 것

            이다. 계정혜를 나눌 수 없지만 실천적인 면에서 계→정→혜의 순차가
            매겨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선정을 성취하

            면 자성의 빛이 저절로 발현된다. 이것이 적이상조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미 부처의 지혜이지만 이렇게 말하면 조이상적과 적이상조 간에 우열

            이 생겨 버린다. 그래서 이 둘을 상적상조와 같이 하나로 묶어 그 동시
            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성철스님도 인용한 바 『선종영가집』의 우필차는 그래서 중요하다. 사
            마타의 선정과 비파사나의 지혜에 대한 언술을 그냥 나열해 버리면 사

            마타를 원인으로 하여 비파사나의 결과를 얻는다는 논리가 세워진다.
            참선 수행에서 순차는 항상 위험하다. 시간이 개입되면 과정과 결과를

            둘로 구별하는 분별적 사유가 침입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춤
            도 부정하고 고요함도 부정하여 모두 빼앗아 버리는 우필차를 세워 순

            차성 대신 동시성이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다. 입을 열면 8만4천의 법
            문이 되고, 입을 닫으면 바이샬리 유마의 입닫음(杜口)이 되는 것도 같

            은 이치이다.
               한편 성철스님이 강조한 바와 같이 상적상조는 부처의 지위와 여래

            의 대적광경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때 고요함은 전6식과 제8
            아뢰야식이 소멸한 상태를 가리키고, 비춤은 내외의 경계에 흔들림 없

            이 거울 같은 알아차림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분명하게 비추되 제6식의
            분별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것이 묘관찰지의 비춤이다. 제7식이 멸진하

            여 아집, 법집이 없으면 이것이 평등성지의 비춤이다. 제8식이 멸진하
            여 추호의 분별망상조차 없으면 이것이 대원경지의 비춤이다.

               이렇게 하여 분별심이 없고, 집착심이 없으며, 주체와 대상경계에 대
            한 의식조차 없는 이것이 고요함이다. 그리하여 경계를 대하여 분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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