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4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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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소의 오줌, 말의 똥에도 진리의
자성이 담겨 있다. 그뿐인가? 지금의 이 모든 행동, 감정, 행위, 느낌이
모두 불성을 증명한다. 이것을 빼고 따로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러한 입장에서는 지금 이대로 자성이고 이것 그대로 부처임을 알아 거
기에 계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 어떤 추구도 소를 타고 소
를 찾는 일, 물 속에서 물을 찾는 일, 사물을 보고 있으면서 자기 눈을
찾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에 속한다. 이 길의 핵심은 도저한 알아차
림에 있다.
대체로 선지식들은 이 세 가지를 함께 실천하였고 또 함께 가르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으로 이 중의 어떤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게 된다. 그것이 선사의 가풍을 결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철선은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도록(一念不生) 하는 일에 중점을 둔
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번뇌망상의 구름이 걷히는 일에 법문을 집중한
다. 구름이 걷히면 태양은 저절로 밝다. 그리하여 가장 미세한 의식이
라도 남지 않도록 하는 일에 수행의 모든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아뢰
야식의 멸진을 거듭 말하는 것, 오매일여를 투과해야 한다는 주장, 내
외명철이라야 한다는 강조 등이 모두 이와 관련되어 있다. 또 ‘화두 열
심히 하라’는 최후의 가르침도 같은 차원에서 행해진 것이다.
상적상조의 법문에도 이 종지는 그대로 관철된다. 성철스님은 일체
망상이 다 끊어진 상황을 ‘적寂’이라 보고, 구름이 걷힌 뒤 저절로 태양
의 광명이 드러나는 일을 ‘조照’라 보았다. 물론 구름이 걷히는 일과 해
가 비치는 일은 같은 일이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이것을 상적상조로 묶
어서 설법하면서 그 동시성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성철스님
의 설법은 일체 망념의 적멸, 미세무명의 멸진, 무심의 성취를 핵심으
로 하여 전개된다. 말하자면 ‘고요함(寂)’에 무게 중심이 쏠려 있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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