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6 - 정독 선문정로
P. 606

그 수행의 끝에 10지를 꽉 채운 등각이 있다. 등각은 밝게 비추는 공

            부의 실천을 통해 본래 고요한 적멸과의 완전한 합일에 이른 보살이다.
            그 깨달음은 부처와 동등하다. 그러나 애써 공부한 끝에 완전한 깨달음

            으로 들어서는 차원의 등각과 완전한 무위적멸에 이미 도달한 뒤 다시
            중생의 살림세계로 돌아나오는 묘각 간에는 나아감과 돌아옴의 차이

            가 있다. 그것은 마치 보물섬에서 보물을 구한 뒤 배의 방향을 돌려 돌
            아오는 배와 보물을 구하기 위해 막 그곳에 도착한 배의 관계와 같다.

            비록 동일한 지점에 있지만 보물을 이미 구한 묘각의 배는 중생을 향해
            방향을 향하고 있고, 보물섬에 이제 도착한 등각의 배는 여전히 보물섬

            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철스님은 등각조차 묘각과 차이가 있으므로 8지보살은 말할 나위

            가 없음을 밝히기 위해 이 문장을 인용하였다. 등각과 마찬가지로 8지
            의 “조적照寂은 유심유애有心有礙하여 적이상조寂而常照 조이상적照而常寂

            하지 못한”     332  미완의 단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8지 무공용이라고 해
            서 공부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공용지에 이른 8지보살은 무엇을 하는가? 다시 공
            부를 짓는가? 아니면 맡겨 두는가?

               성철스님은 여기에서 화두참구를 계속하는 길을 제시한다. 물론 이
            차원에서 화두참구는 그 자체가 맡겨 두는 일이고, 맡겨 두는 일이 곧

            화두참구가 된다. 이처럼 마지막 구경각에 이르기 전까지 화두참구를
            멈춰서는 안 된다는 주제 의식이 『선문정로』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현

            실적으로 깨달음을 자처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등각은 물론 8지보살
            에도 미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이것이 성철스님의 진단이




             332   퇴옹성철(2015), p.261.



            606 · 정독精讀 선문정로
   601   602   603   604   605   606   607   608   609   610   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