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9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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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이 함께 완전하며 보리와 한 몸인 동시에 중생과 한 몸이 된다. 자

             리이타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용된 원효스님의 『금강삼매경론』에서는 조적혜와 적조혜의 차이를

             말하고 있다. 조적혜가 아직 생성과 소멸의 모양이 남아 있는 상태로서
             완전한 청정함에 도달한 적조혜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금강삼매

             경론』의 큰 특징은 제9식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효스님은 제9식
             암마라식을 순수 진여, 본래 깨달음으로 보고, 제8식을 일체 감정의 의

             식으로 보는 진제삼장의 설을 채용하여 이것을 해설하고 있다. 이렇게
             순수 진여인 제9식 암마라식과 진여와 망상이 뒤섞인 제8식 아뢰야식

             을 나눠놓으면 등각과 묘각, 조적혜와 적조혜의 분명한 차이를 논의하
             는 데 편리하다.

                이에 비해 현장스님은 제9식 암마라식을 따로 설정하는 진제스님의
             주장에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그것이 제8아뢰야식의 청정한 측면을

             가리키는 명칭일 뿐이지 제9식이라 할 별도의 식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후 구舊유식과 신新유식을 가르는 논점의 하나가 된

             다. 그런데 신라스님으로서 해동유식의 조사로 불린 원측스님은 현장스
             님을 스승으로 삼았으면서도 진제스님의 설을 함께 인정하는 조화론적

             입장을 취한다. 원효스님 역시 통섭적 입장에서 진제스님의 설에 기초
             하여 제9식을 설명한다.

                성철스님은 제8뢰야를 근본무명으로 보는 입장에 있으므로 추호의
             오염도 없는 본래 깨달음, 그러니까 순수 진여로서의 제9식을 별도로

             설정하여 설명하는 원효스님의 설을 취하고 있다. 다만 그것은 제9식
             의 타당성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제8미세유주를 영단해

             야 궁극적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논의를 전개하는 데 제9식의 설
             정이 편리한 점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성철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제12장 상적상조 · 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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