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3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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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최초의 눈뜸과 최종적 깨달음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경우 청정법안의 획득을 해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불교적 수행과 깨달음에 대한 논의가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이
최초의 눈뜸과 최종적 깨달음 사이에 다양한 지위가 제시되기 시작한
다. 성문4과의 지위론도 그에 해당한다. 깨달음의 흐름에 들어가는 수
다원의 지위에서 시작하여 사다함, 아나함의 단계를 거쳐 아라한의 최
종 지위에 도달하는 전체 여정을 제시한 것이다. 간단하기는 하나 최초
의 눈뜸과 최종적 깨달음을 설했던 초기의 경우에 비해 상당한 체계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교학 체계에 따라 10지론, 17지론, 41
지위론, 52지위론 등 다양한 지위론이 설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지위론이 정밀해질수록 깨달음이 객체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깨달음이 객체화되면 깨달음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는 법집法
執에 걸릴 수 있다. 또 그것을 자신의 당면 과제로 끌어안는 대신 객관적
문제로 논의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부작용이 일어나곤 한다.
이러한 부작용을 피해 지위론적 논의를 싹 걷어내고 단번에 여래의
자리에 들어가는(一超直入如來地) 길을 걷고자 했던 것이 선종이다. 특히
6조스님은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진여실상에 계합하는 돈오돈수의 수
증론을 제창한다. 그것은 지금 당장 무심을 닦아 본래의 무심에 이르
는 길이기도 하다. 이 돈오돈수의 현장에서는 더 이상 닦음과 깨달음이
둘이 아니다. 닦음이 그대로 깨달음이고, 깨달음이 바로 닦음이다. 역
사상 다양한 선종의 유파가 출현하였지만 돈오돈수하여 곧바로 여래의
지위에 들어가는 남종선은 특별한 성취의 궤적을 그려왔다. 그러니까
돈오돈수론의 우수성은 그것이 이후 불교적 실천과 성취의 핵심이 되
었다는 사실로도 충분히 증명되는 것이다.
그런데 각자가 체험한 바 돈오의 내용이 원리적 차원에 있어서는 처
제13장 해오점수 · 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