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7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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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 않는 깨달음이 일어난다. 그것을 사거리에서 친아버지를 만난 것

             과 같다고 표현한다. 10년을 못 만났다 해서 요모조모 확인해 본 뒤 아
             버지라고 결론 내리겠는가? 생각해 보고 말고가 없이 그냥 분명하게 아

             버지임을 안다. 진여를 직접 확인하는 증오가 그렇다.
                그런데 규봉스님은 해오에 새로운 개념을 부여하면서까지 이를 높이

             제창한다. 깨달음에 기초하여 닦는 것이 해오점수로서, 닦음에 의지하
             여 깨닫는 증오보다 고차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규봉스님은 해오야

             말로 남종선의 생명이요, 달마선의 정통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선의
             수증론과 화엄학을 통섭하여 선과 교에 두루 적용되는 완벽한 이론을

             제시하고자 했던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규봉스님은 돈오점수, 혹
             은 해오점수야말로 교의 원리와 선의 실천이 모순 없이 통일되는 길이

             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한 그것은 하택신회스님을 정통으로 세우고자 하는 의도의 결과이

             기도 하였다. 그는 신회스님이야말로 공空을 깨달아 돈오문을 충족하였
             고, 점차적으로 망념을 쉬는 점수의 길을 걸어 점수문을 충족함으로써

             돈오점수의 종지에 가장 부합되는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높이 평가한다.
             반면 신회스님과 구별되는 마조스님에 대해서는 강력한 비판을 행한다.

                그런데 이후 선종사의 전개는 거의 마조스님에 대한 대긍정의 역사
             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신회스님은 6조스님의 직계 제자로서 남

             종선을 띄우는 데 막대한 공헌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해종도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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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비판까지 받게 된다. 하택종의 흐름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규봉스님

             대에 이르러 단절되고 만다. 또한 규봉스님이 최고 중의 최고 근기로서
             돈오돈수의 유일한 모델로 지목한 우두스님 또한 6조스님의 법과 괴리




                 『
              337   六祖大師法寶壇經』(T48, p.359c), “汝向去有把茆蓋頭,也只成箇知解宗徒.”


                                                            제13장 해오점수 ·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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