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8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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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점이 많아 외도로 지목되기까지 한다.

               결국 규봉스님에 대한 찬양이나 비판은 그 돈오점수론의 제창과 관
            련되어 있다. 규봉스님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까지 해오를 높이

            제창한 것은 교와 선을 일치시키고자 하였던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후 돈오점수설을 수용하는 선사들조차 해오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의미 규정을 수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감산스님이 그 대표
            적인 경우이다. 감산스님은 깨달은 뒤의 본격 수행, 즉 돈오점수의 주

            장을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해오에 대해서만은 여지없는 비판을 가한
            다. 그로 인해 지견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궁극적 깨달음인 증오를

            가로막는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감산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이들에게는 먼저 깨달은 이후에 수행하는 경

               우가 있고, 먼저 닦은 이후에 깨닫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깨달음에
               는 해오와 증오의 차이가 있다. 만약 부처와 조사의 말을 통한 가
               르침에 의지한다면 그것은 해오로서 대부분 앎과 견해의 차원에 떨
               어져 일체의 경계와 인연을 대하여 힘을 얻지 못하고 마음과 대상

               을 둘로 나누어 걸림 없이 통일시키지 못한다. 고비마다 막히는 체
               증이 되고 수시로 장애가 된다. 이것은 상사반야로서 진정한 참선
               이 아니다. 증오의 경우에는 자기 마음속에 착실하게 공부를 지어
               나가다 물길과 산길이 끊어진 자리에서 홀연히 한 생각을 단번에

               쉬게 되면서 자기 마음을 철저하게 깨닫는 일이다.                 338






                『
             338   憨山老人夢遊集』(X73, p.469b), “凡修行人, 有先悟後修者, 有先修後悟者. 然悟
                有解證之不同, 若依佛祖言教明心者, 解悟也. 多落知見, 於一切境緣, 多不得力.
                以心境角立, 不得混融, 觸途成滯, 多作障礙, 此名相似般若, 非眞參也. 若證悟
                者, 從自己心中, 樸實做將去, 逼拶到水窮山盡處, 忽然一念頓歇, 徹了自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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