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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응하는 원교의 담론들을 설하기도 하는데, 그 믿음과 이해가 물러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2) [여기에서 논하는] 선종은 가르침의 밖에 별도로 전해진 것으로
서, 곧바로 가로질러 [깨달음에 들어가는] 문이다. 개념의 틀을 벗어
났으므로 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믿고 들어가기 어려울 뿐만 아니
라 선문의 사람이라 해도 근기가 낮고 식견이 얕은 사람들은 까마득
히 모른다.
3) 그러므로 “가르침의 밖에 별도로 전해진 것으로서 교학적 가르침
을 훌쩍 벗어나 있다. [식견이 얕은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4) 모름지기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은 활구를 참구해야지 사구를 참
구해선 안 된다. 활구의 아래에서 깨달음에 나아가면 영겁토록 잊지
않지만 사구의 아래에서 깨달음에 나아가면 자기 자신도 구하지 못
한다.
[해설] 보조스님은 『간화결의론』에서 경절문을 높이 제창하고 그것이
교학적 지해와 병립할 수 없음을 역설한다. 그럼에도 수시로 교학적 가
르침을 차용하는 문을 열어놓는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보조스님을 ‘참
묘한 분’이라 했다. 지해의 장애를 거듭 말하면서 ‘끝끝내 원돈신해문을
버리지 않으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보조스님은 선종에도 원돈신해의 교학을 빌려 선종을 깨닫도록 하
는(借敎悟宗) 가르침이 많다고 밝힌다. 진성연기眞性緣起, 사사무애事事無
礙의 도리를 말하거나 체중현의 도리를 알도록 하는 일 등이 그 예라는
것이다. 또한 한량없는 국토의 이곳과 저곳이 터럭만큼도 나뉘어 있지
않다고 하거나, 10세와 고금의 처음과 끝이 지금 이 순간을 떠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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