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07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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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다. 성철스님은 언어와 이해의 차원에 머

             무는 해오는 그 자체가 병이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이 문장을 인용하
             였다.

                인용문에 표시된 ③과 같이 ‘여기에서 논하는(今所論)’이라는 구절이
             생략되었다. 전체적 문맥은 별교나 원교에 비해 경절문이 빠르게 깨닫

             는 길이라는 점을 말한다. 이에 의하면 별교나 원교에서도 무념으로 진
             여에 상응하는 길을 제시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지해에 의지하여 지해

             를 내려놓고자 하므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고백한다. 이에 비해 경
             절문은 무념의 실천으로 무념에 계합하므로 빠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 ③의 ‘여기에서 논하는’이라는 구절은 이처럼 여타 교학의 경우와
             비교하는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말이다. 성철스님은 이것을 삭제함으로

             써 전체 문맥에서 떼어내어 독립된 문장을 만들고자 하였다.
                ④를 생략하여 ‘빠르게 질러 증득하여 들어가도록 하는 길’을 경절문

             으로 표현하였다. 경절문은 빠르게 깨닫도록 하는 간화선의 특징을 단
             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므로 굳이 ‘깨달아 들어가도록 하는’이라는 중복

             된 수식을 붙일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⑤와 같이 ‘망연罔然’을 ‘망연茫然’으로 바꾸어 표현하였다. 둘 다 ‘까

             마득히’라는 뜻으로 통용되는 단어이므로 의미상 변화는 없다.
                ⑥에 어조사 ‘의矣’ 자가 생략되었다. 한글 현토와 뜻이 중복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인용문 3)은 교외별전인 간화선 경절문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구절이

             다. 전체 문맥에 따르면 모든 불교적 가르침과 실천은 일심법계에 환하
             게 통하는 길을 걷는다. 그렇지만 경절문은 모든 교학이 비교할 수 없

             는 빠른 지름길을 걷는다. 간화선에서는 애초부터 듣고 이해하는 마음
             을 내려놓고 오로지 의미를 벗어난 화두를 들 뿐이다. 말의 길, 의미의




                                                            제15장 다문지해 · 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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