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1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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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일으키고 결론은 언제나 괴로움이 된다. 마

             음에 맞지 않는 일은 원래 괴롭다(苦苦). 마음에 흡족한 일은 그것이 곧
             사라지기 때문에 괴롭다(壞苦). 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것은 언

             젠가 둘 중의 하나가 되기 때문에 결국 괴롭다(行苦).
                불교의 가르침은 이처럼 자신이 괴로움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는 사

             실을 바로 알라고 요구한다. 그리고는 그 고통의 원인을 밝히고, 그 해
             결의 가능성을 믿게 하고, 그 해결의 길을 걷도록 안내한다. 이것이 고

             집멸도苦集滅道의 4성제이다. 부처님은 처음 법을 펼치면서 세 번이나
             그것을 반복하였다. 그만큼 중요하게 다뤘다는 뜻이다.

                이 중 특히 집集이 중요하다. 모든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집은
             생사의 괴로움을 불러모은다는 뜻이다. 그래서 ‘고집苦集’이라 표현하기

             도 한다. 실상에 어두우면 자아가 영속적 실체를 갖고 있다는 견해를
             세우게 된다. 이로 인해 만사만물에 대해 애착과 미움의 마음을 일으킨

             다. 이제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짓는 모든 일들이 업이 된다. 구멍 난 항
             아리와 같이 모든 것이 끝없이 새 나가고, 스스로 생사의 바다에 떨어

             진다.
                이러한 유루를 멸진하려면 무명과 아견, 그리고 애착을 끊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 실천을 통해 궁극의 성취에 이를 때 이것을 누진漏盡이
             라 한다. 누진은 초기불교에 『누진경』이라는 경전이 전할 정도로 중요하

             다. 이 짧은 경전은 바른 관심과 바른 앎을 통해 누진을 성취하는 빠른
             길을 제시한다. 바른 관심이란 무엇인가? 원래 우리가 일으키는 특정한

             관심과 질문은 정답의 범위를 한정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과
             거에 나는 존재하였는가’ 하는 관심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

             는 존재하였다, 혹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둘 중의 하나에서 정답이 나
             와야 한다. 그런데 어느 쪽으로 답하든 간에 불멸의 실체가 있다는 상




                                                            제16장 활연누진 ·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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