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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론과 아무것도 없다는 단멸론의 어느 하나에 속하게 된다. 그리고 그
렇게 도출된 답은 유루번뇌의 소멸에 어떠한 힘도 주지 못한다. 나는
무엇이었는가?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등의 질문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꼬리를 무는 견해의 밀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러한 논의를 유희적 논의(戱論)라 하여 배격한다.
그렇다면 바른 정답을 유도하는 바른 관심이란 무엇인가?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아 자신의 살림살이가 이대로 괴로움이며, 집착하는 것이
그 원인이 되며, 괴로움의 소멸이 있으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길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견해의 오류들, 예컨대 몸과 마
음을 나라고 보는 견해(我見), 편벽된 행동을 바른 계율로 착각하는 견
해(戒禁取見), 우왕좌왕하는 견해(疑見) 등이 제거된다.
이와 함께 감각적 욕망의 발산으로 인해 발생하는 괴로움을 끊는 등
과 같은 실천의 길이 제시된다. 대체적으로 그것은 심신에 대한 동일시
에서 벗어나는 일, 수행 환경을 잘 선택하는 일, 욕망을 방기하는 일,
선정과 지혜를 닦는 구체적 방법의 제시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한편 대승경전에서는 무명번뇌까지 모두 끊는 일을 누진이라 하여 그
것이 소승의 아라한과와 차원을 달리함을 강조한다. 대승경전의 관점에
의하면 소승의 아라한은 견해와 사유에서 비롯되는 거친 번뇌(견사혹)를
끊는다. 이에 비해 대승의 대력아라한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대상에 대
한 앎의 오류(진사혹)와 뿌리 깊은 미세무명(무명혹)을 끊는다. 성철스님이
소승의 아라한과 대력아라한을 구분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한편 유루가 멸진하면 누진통을 얻게 된다. 성문승의 경우, 견해와
생각의 오류로 인한 번뇌를 끊는 것이 누진이다. 이로 인해 마음과 현
상에 장애가 없는 누진통이 일어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6신통이라 해
서 깨달음의 과정에서 얻게 되는 신비한 능력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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