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33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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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여간해서 인정하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철스님에

             대한 비판의 한 축은 성철스님의 이러한 태도와 관련된 것일 수도 있
             다. 또 보다 화쟁적인 입장에서 ‘크게 같은 부분(大同)을 적극 인정하고,

             일부 다른 부분(小異)을 비판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표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황벽스님이나 초원스님, 대혜스님 같은 임제종의 대종사들은
             포용적 태도가 후학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황벽

             스님은 마조스님의 직계 제자들을 거침없이 부정한다. 그들은 모두 스
             승의 법형제들로서 자기의 사숙뻘되는 선지식이었지만 황벽스님은 그

             비판에 거침이 없었다.
                또 황룡스님은 초원스님의 회상에서 눈을 뜨고 난 뒤에는 자신의 원

             래 스승인 늑담회징스님의 법을 가차없이 부정해 버린다. “늑담은 정말
             로 죽은 말로 사람을 가르쳤다.”고 비판했다. 황룡스님은 당시 이미 공

             식적으로 늑담스님의 계승자로서 법좌를 반분하여 대중들을 교화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도 깨달음을 얻고 나서 스스로 초원스님의 법을 받

             았다고 공표해 버린다. 이로 인해 늑담스님의 문하들과는 아예 관계가
             끊어지게 된다.

                한편 대혜스님이 스승 원오스님의 『벽암록』을 불태워 버리는 사건도
             있었다. 그것은 유교식으로 보자면 사문난적斯文亂賊의 폭거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것을 불태운 대혜스님을 보던 당시의 분위기도 그랬다. 그
             렇지만 성철스님은 이를 찬양해 마지않는다. 차라리 온몸이 가루가 되

             어 지옥에 들어갈지언정 불법으로 인정을 팔지 않겠다고 한 대혜스님의
             진면목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혜스님의 폭거는 진정한 수행의

             현장에서 보자면 영원한 미담이자 선의 위대함에 대한 찬가가 된다. 가
             장 존경하는 스승, 선배, 동시대의 도반, 간절함으로 사무치는 학인들




                                                            제17장 정안종사 · 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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