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35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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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지 못하는데 귀종스님만이 인정할 만하다는 것이었다. 에두르지
않고 바로 가리켜 보이는 귀종스님의 수단에 감탄한 것이다.
이와 똑같은 일이 황벽스님과 임제스님 사이에서 일어난다. 임제스님
이 법을 물을 때마다 황벽스님은 몽둥이질로 대답을 대신한다. 이것이
세 차례나 반복된다. 이에 임제스님은 황벽스님을 떠나 대우스님에게
가서 이 사연을 말한다. 대우스님은 그 말을 듣고는 황벽스님이 손자
를 보살피는 할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도를 알려주고 있다고 감탄한다.
임제스님이 그 순간 마음을 직접 가리켜 보이는 법의 비밀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황벽스님에게 돌아와서 이를 재차 확인하고 그 법을 잇는다.
당시 법을 확인하던 현장에서 임제스님은 그 스승인 황벽스님의 뺨
을 때렸다고 한다. 이것은 황벽스님이 스승 백장스님의 뺨을 때린 일과
일치한다. 물론 뺨을 때리는 일 자체가 정답은 아니다. 스승의 뺨을 때
리는 과격한 행위는 깨달음의 진실성을 드러내고 그것을 확인하는 정
안종사의 눈을 갖추었음을 확인하는 하나의 현장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극적인 에피소드에 임제종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마음을 직접 가리켜 보이는 일이 있고, 마음
을 밝히고 자성을 보는 일이 있고, 3현3요三玄三要가 갖춰져 있기 때문
이다. 이후 임제종 정안종사들의 오도인연은 모두 이 황벽스님과 임제
스님 간의 원곡을 변주한다.
양기방회楊岐方會스님도 그랬다. 양기스님은 초원스님의 법을 잇는다.
그런데 양기스님이 공부할 때, 스승인 초원스님의 가르침이 그다지 친
절하지 않았다. 법을 물어도 지금 바쁘다거나 네가 나보다 나은데 말해
줄 게 뭐가 있겠느냐는 등의 대답으로 일관하였다. 양기스님이 하루는
스승과 함께 밖에 나갔다가 큰 비를 만났다. 비에 젖은 진흙길에 양기
스님은 스승을 등에 업는다. 그렇게 얼마를 가다가 스승을 내동댕이치
제17장 정안종사 · 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