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36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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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말한다.
양기 : 노인네야! 오늘은 꼭 말해 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는다.
초원 : 네가 지금 이 일을 알았으니, 나도 말할 게 없다.
이 대답에 양기스님은 모든 일을 분명하게 깨닫는다. 사실 양기스님
의 시대쯤 되면 제방의 참선 좀 한다는 선사들은 모두 기이한 말과 행
동으로 현묘한 도리를 표현하는 것이 유행처럼 퍼진 상황이었다. 몽둥
이를 휘두르고 고함을 치는 것은 이미 낡은 표현이 되어 있던 시대였
다. 그런데 양기스님의 설법은 평범하면서 실질적이고 이렇다 할 특징
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깨달음의 현장은 이렇게 극적이었다.
사실 알고 보면 이것이 신화처럼 기록되어서 그렇지 이들 정안종사들의
행동은 평범하고 단순하다는 점에서 완전히 동일하다. 특별한 것이 있
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안종사들은 이것을 판별하는
바른 눈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선문의 생명줄이 된다. 이렇게 열린 양기
파에서 오조법연스님이 나왔고, 오조스님에게서 원오스님이 나왔고, 원
오스님에게서 대혜스님이 나왔다.
성철스님은 이러한 정안종사들이 후학들로 하여금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매일
여의 수승한 경계에 머물지 않고 이를 뚫고 지나가 진정한 구경무심,
견성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안종사의 설
법은 전체 『선문정로』의 결론을 준비하는 즈음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다. 특히 정안을 갖춘 종사들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거듭 밝힘으로
써 약간의 견처를 가지고 함부로 깨달음을 자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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