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53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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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정로  선성先聖이 말했다. 차라리 파계하기를 수미산같이 할지언

                정, 사사邪師에게 사념邪念으로 훈습薰習되어 개자芥子만큼이라도 정
                식情識 중에 침입하여서는 아니된다. 식유食油가 면중麵中에 혼입混入

                됨과 같아서 영원히 출리出離하지 못한다.



                현대어역  옛 성인이 말했습니다. “차라리 파계를 수미산과 같이 할지
                언정 삿된 스승에게 삿된 생각으로 물이 들어서는 안 됩니다. 개자

                씨만큼이라도 생각과 의식에 들어가면 마치 밀가루에 기름이 들어간
                것처럼 영원히 빼낼 수 없습니다.”



             [해설]  대혜스님에게는 도를 묻는 고관대작들이 많았다. 대혜스님은

             이들과 편지로 왕래하며 활구참구를 격려하는 입장에 있었다. 인용문
             은 참정參政 이한로李漢老에게 보내는 편지글이다. 묵조와 정좌를 내용

             으로 하는 묵조선은 삿된 선으로서 한 번 빠지면 쉽게 벗어날 수 없다
             는 점, 그것이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들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하

             는 내용이다. 그런데 묘고당妙高堂으로 불리는 추밀원의 한 관리가 이런
             병에 빠져 있으므로 참정 이한로에게 직접 만나보라는 부탁을 한다. 또

             한 가능하면 바른길로 이끄는 동사섭을 실천해 달라는 당부를 한다.
                대혜스님은 선을 닦는 사람이 알고, 보고, 이해하는 일을 추구하는

             것은 잡스러운 독이 심장에 들어간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불법을 추구
             한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일어난다면 치명적 독에 중독된 것과 같아

             치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묵조선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하지
             만 이미 부처를 세우고 있으므로 지해의 성분이 개입되어 있다고 본 것

             이다. 성철스님은 삿된 견해를 가진 스승의 피해가 가공할 만하다는 점
             을 강조하기 위해 이것을 인용하였다.




                                                            제17장 정안종사 · 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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