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57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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념의 때가 묻게 된다는 데 있다. 그것에 사연과 의미가 담기고 그에 따

             라 생각이 끼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더 이상 말의 길을 끊고
             (言語道斷), 마음이 갈 곳이 없게 하는(心行處滅)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다. 당연히 이 말은 오직 이것일 뿐인 자리에 계합하도록 하는 힘을 상
             실한 죽은 말이 된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방법이 등장한다. 고함을 친

             다든가, 몽둥이를 휘두른다든가, 먼지떨이(拂子)를 들어 보인다든가, 침
             묵한다든가, 한마디로 짧게 말한다든가, 혹은 간곡하게 거듭 설한다든

             가 하는 등의 방편이 그것이다. 그 목적은 곧바로 자성을 보도록 하는
             데 있다. 그래서 이러한 수단을 잘 쓴 스님들은 정안종사로서 대중들의

             귀의 대상이 되었다.
                원래 스승의 법을 이은 제자들은 그 뛰어난 수단을 함께 계승하는

             경우가 많았다. 스승들 또한 제자들의 열망에 부응하여 자신이 효과를
             본 방법을 정리하여 전수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6조스님은 36가지

             대법對法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방법으로 제자들에게 전수한 바 있다.
             삶에 집착하는 이에게는 죽음을 보이고, 본질에 집착하는 이에게는 현

             상을 제시하는 것이 36대법의 원리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어느 한쪽에
             머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적절하게 활용된다면 구도자를

             중도의 실천 현장으로 초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핵심은 수행자가 빠
             져 있는 맥락 자체를 끊는 데 있었다.

                선문에서는 6조스님의 대법을 모델로 하여 다양한 방법들이 계발되
             고 활용되었다. 이와 동시에 스승의 방법을 정형화하여 활용하는 그룹

             들이 형성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5가7종이다. 그 형성된 순서에
             따라 보자면 위앙종, 임제종, 조동종, 운문종, 법안종이 있었고, 임제종

             의 지맥으로 황룡파와 양기파가 있었다.
                이 중 위앙종은 가장 먼저 사라지고 운문, 임제, 법안종은 송나라




                                                            제18장 현요정편 · 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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