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2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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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것을 하나씩 억지로 떼어내어 개념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탑주스
님의 해석은 이론적으로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바로 그 ‘이
론적으로 큰 문제 없음’이 선문에서는 병이 된다.
나아가 3현을 지위로 해석하는 경우, 1현문마다 3요를 포함한다는
말에 착안하여 3현9요를 발명해 내는 일 등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
것이야말로 문자선의 개념놀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임제
스님이 뜻한 바가 아니었다.
깨달음의 언어에는 존재성과 의미성이 통일되어 있고, 나아가 불이
의 차원에 대한 각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주체와 대
상에 대한 집착이 사라진 차원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언어에 의지하되
말의 길이 끊어진 언어, 그것이 3현3요의 비밀이다.
그런 점에서 임제스님의 3현3요는 단지 임제종에만 한정되지 않는
다. 모든 정안종사의 가르침에 3현3요가 구현되어 있다. 법안스님과 여
칙如則스님의 법문답을 보자. 법안스님은 여칙스님이 입실 참문하는 일
이 없자 그 이유를 묻는다. 여칙스님이 대답한다.
여칙:스님은 모르십니까? 저는 청림青林에서 도를 얻었습니다.
법안:한 번 나에게 말해 보게.
여칙: 제가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고 물었단 말입니다. 청림선사가
대답하기를, 병정丙丁동자가 불을 구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법안: 좋은 말이네. 그렇지만 그대가 틀렸을 수 있으니 더 말해 보게.
여칙: 병정은 불에 속하므로 불로 불을 구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로 제가 부처인데 다시 부처를 찾는 격입니다.
법안:그대가 과연 잘못 알았네.
여칙이 분해서 바로 일어나 강을 건너갔다. 법안스님이 말했다.
“그가 돌아온다면 구해줄 수 있겠지만 돌아오지 않는다면 구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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