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59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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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된다. 임제스님은 “그대들에게는 붉은 살덩이 위의 무위진인이 하나
있어 바로 앞에 출입하고 있으니 이것에 의지하여 보라.”고 설법한다.
그러자 제자가 묻는다.
“어떠한 것이 무위진인입니까?”
스님이 법상에서 내려가 그를 잡고 말한다. “말해라, 말해!” 제자가
말하려고 하자 그를 밀치며 말한다. “무위진인은 무슨 똥 막대기냐?”
그리고는 방장실로 돌아간다.
이 가르침에는 유위적 수행의 부정→무위진인의 제시→무위진인의
부정→실상의 제시를 통해 수행자의 생각을 단번에 끊는 통쾌함이 있
다. 그것은 수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한순간도 머물 수 없는 전투의 현
장이다.
조동종은 그 수행과 깨달음의 현장이 의젓하고 온건하여 선비의 기
풍이 있다는 평을 받았다. 그것은 동산스님이 물에 비친 그림자를 보
고 ‘그것이 바로 나(渠正是我)’임을 알았던 인연에 기초한다. 곳곳에서 법
을 만난다면 지금의 모든 현장이 ‘나’이다. 밖에서 법을 찾을 일이 없다.
따라서 조동종의 문하에서는 말없이 비추어 알 뿐, 상관하지 않는 자
리로 나아간다. 밖으로 인연에 끌리는 마음을 이끌어 자기 집에 돌아와
쉬도록 하는 것이다. 법연스님은 이것을 ‘집으로 편지는 이미 보내 놓았
지만 아직 도착하지는 않은 상황(馳書不到家)’으로 묘사했다. 편지를 누가
읽어야 내 외로움과 억울함을 알아줄 텐데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으니
그것을 달랠 길이 없다. 이를 위해 조동종의 가르침에는 말없이 계합하
도록 거듭 짚어주는 간곡함이 있다. 그래서 세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운문종은 고원함과 험준함, 그리고 간결명쾌함으로 이름이 높았다.
이리저리 많은 말을 하는 일 없이 짧은 한두 마디 말을 통해 수행자의
생각을 끊고 본래면목을 바로 보도록 하였다. 그것은 ‘선연한 붉은 깃발
제18장 현요정편 · 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