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0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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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뜩이는 듯(紅旗閃爍)’하다고 묘사된다. 보여주는 것은 일부분이지만

            항상 전체를 담고 있어 자꾸 노출되다 보면 어느새 계합하게 된다는 것
            이다. 이와 관련하여 흔히 운문3구雲門三句를 말한다. 그 언어가 하늘과

            땅을 아우르고(函蓋乾坤), 생각의 흐름을 단번에 끊으며(截斷衆流), 있는
            그대로 오는 이대로 실상을 확인하도록 하는(随波逐浪) 특징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수행자는 이를 통해 헤아리고 짐작하는 일을 쉬고 전체
            이대로 오묘한 본체와 계합한다. 만 가지 생각들을 단번에 쉬고, 말과

            생각의 길을 끊어, 사물과 현상 전체가 진여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운
            문의 법은 항상 수행자의 질문에 대해 맥락을 끊는 대답을 내놓아 의심

            을 일으키도록 하는 특징이 있다. 이 한 점을 사무치도록 껴안고 의심해
            들어가면 시절인연에 의해 반야와 상응하게 되는 것이 운문의 일이다.

               법안종은 간단명료한 점에서 운문종과 같고, 온건하고 치밀하다는
            점에서 조동종과 같다. 그 인도하고 교화하는 말이 평범하지만 그 안에

            깨달음의 계기를 가득 담고 있다는 말이다. 특히 수행자의 문제점을 파
            악하여 적절한 처방을 내려주는 데 뛰어났다. 법연스님은 이것을 ‘순라

            꾼이 통금을 범한 격(巡人犯夜)’이라 묘사했다. 스스로의 법망에 스스로
            의 몸을 던지듯 저절로 깨달음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그 종

            조인 법안스님이 직접 편찬한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은 법안종의 이러
            한 특징을 웅변하는 글이다. 이 책은 참선하는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발

            견되는 열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문제점
            에서 시작하여 수행자의 지해를 멸진하여 밝은 거울을 되찾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3계유심三界唯心의 도리를 강조하였는데, 그 설복을 위한
            언구들은 자세하면서도 분명하다.

               아마도 이것은 법안스님이 스스로 경전 공부와 참선 수행을 병행한
            일, 선과 교가 둘이 아니라는 강령으로 제자들을 길러낸 일과 관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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