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5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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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된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병이 나으면 더 이상 약이 필요 없는 것처
럼 견성하면 경전 공부와 참선 수행을 모두 내려놓고 부처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견성 이후의 닦음을 말한다면 그것은 견성이
라 할 수 없다.
견성했다고 하면서 정을 닦느니 혜를 닦느니 하는 것은 아직 미세
망상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견성이 아니다. 더 이상 배우고
익힐 것이 없는 한가로운 도인, 해탈한 사람이 되기 전에는 견성이
아니다. 이것이 『선문정로』의 근본 사상이다. 11
성철스님은 견성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선종의 종지를 흐리고 정맥
을 끊는 심각한 병폐” 라고 진단한다. 제6식의 거친 망상과 제8아뢰야
12
식의 미세한 망상까지 완전히 제거된 무심이라야 견성이다. 그러므로
만약 수행이 더 필요하다면 그것은 견성이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 닦을 것이 없는 차원이라야 견성이라 할 수 있다는 이 주장은 깨
달음 이후 오랜 시간의 점수가 필요하다는 돈오점수론을 정면으로 겨
냥한다. 또한 불교의 목적이 성불에 있다는 불교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 하는 구상의 기본 틀을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성철스
님만의 독창은 아니다. 성철스님은 『종경록』을 비롯하여 『능가경』, 『대
열반경』, 『대승기신론』, 『유가론』, 『육조단경』, 『원오어록』 등의 문장을 그
전거로 제시한다. 다만 이것이 성철스님의 설법을 관통하는 뚜렷한 주
제 의식이라는 점에서 이를 성철선의 제1종지라 부르고자 하는 것이다.
돈오원각론은 성철스님이 만난 불교적 숙제에 대한 답안의 제시이기
11 퇴옹성철(2015), p.18.
12 퇴옹성철(2015), p.16.
부록 - 성철선의 이해와 실천을 위한 시론 · 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