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0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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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행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렇게 보면 ‘좌坐’→‘생生’의 대체는 깊
은 고려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특히 제5장의 설법 주제인 무생법인의
설법을 통해 돈오원각의 논리를 강조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대
체가 이루어졌다고 이해된다.
다음으로 돈오원각론은 그 깨달음의 완전성을 강조하는 제7장 「보임
무심」의 장에서 변주되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보임에 대한 설법은 깨
달음의 경계에 대한 보호(保)를 강조하는 경우와 맡겨 둠(任)을 강조하
는 경우로 나뉜다. 성철스님은 이 중 맡겨 두는 일만 인정하고 보호하
는 일을 비판한다. 보호하고 지킬 것이 있다면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라
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철스님에게 보임의 의미는 극히 중요하다.
『선문정로』 전체 19장 중 가장 자세한 견해를 피력한 것이 바로 견성즉
불과 보임무심을 설한 두 장이라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
다. 견성즉불은 제1장이자 전체 종지를 드러낸 표종장에 해당하므로
그것을 자세하게 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보임무심이 압도적인
분량을 차지한다는 것은 그것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뜻이 된다. 해
석과 강설에 보이는 주제 의식 또한 특히 분명해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보임무심의 장을 시작하는 처음의 두 인용문이
보임이 아니라 견성에 대한 설법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 핵심은 본
래면목을 철증하면 미래겁이 다하도록 자재무애한 대휴헐지大休歇地에
도달하며, 그 열반묘심은 천만년이 다하여도 변이가 없다는 데 있다.
견성에 대한 정의가 이러하므로 견성 이후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견고
히 한다는 의미에서의 보임이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더 견고해지
거나 다시 미약해질 일이 없는 것이 견성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성
취했으니 다시 무슨 일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철스님에게
참다운 보임이란 깨달음 이후 부처로서 자유자재한 생활을 이어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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