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2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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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선종의 역사를 보면 돈오를 표방하는

            조사선을 궁극의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수행을 멈추지 않았던 여래선의
            위에 두고자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우리나라에 널리 퍼졌던 진

            귀조사설도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성철스님은 돈오로서의 견성을 표방하는 선종의 정통을 계승하는

            입장에서 견성이 곧 부처님의 구경원각과 동일한 것임을 강조하는 논의
            들을 수집한다. 그 수집된 자료의 총정리와 통일적 해석의 결과가 바로

            『선문정로』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선사였던 성철스님이 왜 『백일법문』
            과 같은 불교학 개론을 내놓았던 것일까? 또 왜 부처님처럼 살기를 표

            방했던 것일까? 그것은 시대적 숙제에 대응하는 불교의 기본적 답안이
            부처님에게서 시작하여 부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야 했기 때문이

            다. 이렇게 하여 선종의 견성과 부처님의 깨달음을 동일한 것으로 강조
            하는 돈오원각론이 성철선의 제1종지가 되는 것이다.

               돈오원각론의 주제를 담고 있는 「견성즉불」을 『선문정로』의 제1장에
            배치한 것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제1종지에 해당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이를 표종장으로 하여 피력된 돈오원각론은 모든 장에 바
            탕으로 깔려 있지만 특히 「무상정각」, 「무생법인」, 「보임무심」, 「정안종

            사」, 「분파분증」 등의 장에서 강조점을 바꿔가며 거듭 논의된다. 이를
            통해 『선문정로』에서 주장하는 수행과 깨달음의 제1종지가 돈오원각에

            있음을 논증하고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실참실오론은 제2장 「중생불성」을 표종장으로 삼는다. 모든 중생이

            불성을 다 가지고 있으므로 부처이다. 이러한 원리에서 보면 중생이 곧
            부처이다. 이것이 불교의 특장점인 불성론이다. 그런데 원리가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중생은 번뇌망상에 빠진 삶을 살고 있어 진여에 계합하
            여 살아가는 부처와는 다르다. 그래서 성철스님의 불성에 대한 논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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