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2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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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이후의 자유자재한 생활이 진정한 보임이라고 강조하기 위해

            인용된 원오스님의 문장에 앞의 번역과 같이 조심하고 노력할 것을 당
            부하면서 견성 이후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하는 내용이 보이는 것

            이다. 원오스님의 원문과 성철스님의 인용 의도 사이에 맥락적 비틀림
            이 있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원오스님의 본뜻이 ‘한 번 증득하면 영원히 증득하는 것
            이니 미래의 끝이 다할 때까지 생성이니 소멸이니 하는 것에 걸리고 막

            힐 일이 없다’는 말에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 말에 이어 ‘견해가 일어
            나 분별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일을 조심할 것’을 언급함으로써 전달하

            고자 하는 뜻에 손상이 일어났다고 보았다. 문단을 생략한 이유에 해
            당한다.

               원오스님이 말하는 깨달음 이후의 수행이란 견해가 일어나 다시 분
            별에 떨어지는 일을 조심하는 것이고 굳건하지 못한 발디딤을 조심하는

            일이다. 이에 비해 성철스님은 한 번 깨달으면 “미래제가 다하여도 망실
            하지 않는”  완전한 깨달음의 성취를 바탕으로 대무심의 자리에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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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는 일이 보임이라 보았다.
               이처럼 성철스님에게 보임은 크게 쉬는 부처의 자리(大休歇地)에 이르

            러 추호의 의지할 바도 없고 다시 떨어질 일도 없는 자리에서 자유롭게
            맡겨 두는 생애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문장의 생략을 통해 완

            전한 쉼이 아니라면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므로 수행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돈오원각론의 요지를 명확히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돈오원각론에 의하면 견성성불은 누구나 가능한 일이지만 실제 성취




             20   성철스님은 진미래제盡未來際를 ‘미래제가 다하여도 망실하지 않는’으로 번역했
                다. 퇴옹성철(2015),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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