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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발원만 남는 제8지 부동지不動地 보살의 자리는 중요하다. 중생제

            도를 위해 생멸을 거듭하되 그것에 휩쓸리지 않는 부동의 마음을 갖추
            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이것을 단 한마디로 정리한다. “경전에서 여러 가
            지로 무생법인을 설하고 있지만 묘각만이 진무생眞無生”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영원한 깨달음을 무생법인으로 규정한 마조스님의 설법을
            논거로 제시한다. 마음과 대상경계를 깨달아 망상이 생겨나지 않는 것

            을 무생법인이라 한다는 【5-2】의 설법이 그것이다. 성철스님은 이것을
            10지를 초월한 구경무심의 증오證悟로 설명한다. ‘한 번 깨달으면 영원

            히 깨닫는다(一悟永悟)’고 한 마조스님의 깨달음은 구경각 외에 다른 것
            이 될 수 없으므로 여기에서 말한 무생법인 또한 구경무심의 구경각이

            라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반야나 화엄 등의 경전에서의 무생법인에 대한 규정이 틀린 것

            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선문에서는 그 자세하고 체계적인 설명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더디게 한다고 보는 입장을 취한다. 더구나 교가

            에서는 무생법인의 등급을 하품(7지), 중품(8지), 상품(9지)으로 나누어
            구분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진짜 무생법인은 무엇인가를 물을

            만하다.
               여기에 진무생眞無生만을 인정하는 성철스님의 일도양단법이 제기되

            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수시로 이처럼 ‘진짜(眞)’, 혹은 ‘큰(大)’ 등의 수식
            어를 붙여 논의를 단순화하는 어법을 구사한다. 이를 통해 상황은 단

            순해진다. 무심인가 망념인가, 깨달음인가 착각인가, 그 둘 중의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가의 특징적인 어법이기도 하다. 우리가 수행

            이나 깨달음을 설명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존재를 바꾸고
            자 하는 입장에 설 때, 이러한 단순한 자세가 필요하다. 전부 아니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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