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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에서 번뇌의 멸진이란 가장 깊은 층차의 극히 미세한 극미망상의

            멸진이라야 한다.


               3세三細의 극미망상까지 멸진무여滅盡無餘하면 자연히 구경무심究竟

               無心에 도달하나니, 이것이 견성이며 성불이다.               54



               무량한 번뇌에 대한 다스림을 말하는 문장을 해설하면서 이것을 3
            세를 멸진하는 일로 대체하고 있다. 무량한 번뇌와 그것을 다스리는 방

            법을 세세히 논하는 것은 성철스님이 동의하는 바가 아니다. 말끝에 바
            로 눈떠 부처로 사는 길, 그것이 안 된다면 화두일념으로 당장 무심을

            실천함으로써 구경무심에 도달하는 길을 걷는 것이 성철선의 길이다.
            성철스님은 이러한 맥락에서 모든 번뇌망상의 멸진과 구경무심의 성취

            를 미세번뇌의 타파로 설명한다. 이러한 구경무심론의 거듭된 강조가
            성철선의 주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인용문에서는 밑줄 친 부분과 같이 ‘수억의 모든(億諸)’ 번뇌와 번
            뇌‘들(等)’을 생략하여 번뇌의 수량과 종류를 강조하는 어감을 약화시

            키고자 하였다. 이로 인해 ‘무량한 수억의 모든(億諸) 번뇌들(等)’이 ‘무량
            한 번뇌망상’과 같이 간명한 표현으로 바뀌게 된다. 무량한 번뇌 역시

            수량의 의미가 강하지만 이로 인해 3세의 극미세망상을 강조해서 드러
            낼 수 있는 언어적 탄력성이 확보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구경무심 이외의

            모든 차원의 무심과 지혜를 깨달음의 영역에서 배제하는 것은 다음의
            【4-6】 인용문에 대한 조절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되어야 견성케 되므로 분증과 해오를 수도상의 일대장애, 즉 해애解礙라 하여 절
                대 배제하는 바이다. 퇴옹성철(2015), p.49.
             54   퇴옹성철(2015),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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