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2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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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 『퇴옹학보』 제17집
제나[恒] 집요하게[審] 사량[思量]하다’로 번역한다. 29)
그리고 성철은 현수(643-712)의 “<말나식은 별도로 자체가 없어> 위
로는 제8 아뢰야식과 합하고, 아래로는 제6 의식과 합하기 때문에 <별
도로 세우지 않는다>.(<別無自體> 上合第八, 下合第六 <不別立也>)”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것도 일 리가 있는 말이지만 엄격하게 우리의 정신상태
를 분석해 보면 제7식을 두는 것이 논리상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습니
30)
다.” 라고 하여, 말나식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현수의 입장을 비판
31)
한다.
또한 아뢰야식의 또 다른 명칭인 ‘이숙식’에 대해 언급한 『구사론』,
『섭대승론』, 『성유식론』, 『성유식론술기』에서의 근거 내용을 제시한
32)
다. 그리고 “이 심의식 문제를 잘 모르는 사람은 부처님이 입멸한 뒤
29) 『성유식론술기』 2권(T43, 298b).
30) 퇴옹성철(2014), 상권 371-372.
그런데 이 구절[上合第八, 下合第六]의 출처를 현수의 『대승기신론의기』 권2로 표기하고
있지만,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31) 이 입장은 말나식을 전송식(傳送識)이라고 규정하는 명칭에서 유래한 것이다. 전송이란
이쪽에서 저쪽으로 물건을 전해주거나 사람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말나식은 전
송하는 역할을 하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말나식은 아뢰야식과 의식의 중간에
위치하여 심층으로는 아뢰야식, 표층으로는 의식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즉
말나식은 심층[아뢰야식]과 표층[의식]으로 전송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두 마음을 연
결하는 매개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현수는 “말나식은 위로는 제8 아뢰야식과 합하고, 아
래로는 제6 의식과 합한다(上合第八, 下合第六)”고 하여 말나식은 두 식[아뢰야식과 의식]
사이에서 전송자의 역할을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말나식이 중간의 전송자 역
할만 하기 때문에, 다른 식[마음]과 달리 정확한 자기 역할이 없는 마음이라고 규정하여,
필요 없는 마음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현수이다. 성
철은 이 입장을 비판하는 것이다.
32) 성유식론술기』에서는 이숙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변이이숙(變異而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