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6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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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 『퇴옹학보』 제17집
철은 앞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하면서 해설을 붙이고 있는데,
“ 진제의 이치에서는 깨달음의 방법이 있다는 것은 공이 곧 유이고,
속제 중에서는 현묘하게 머물고 버릴 줄 안다는 것은 유(有)가 공
이니 공즉시색, 색즉시공과 아주 비슷한 뜻이 됩니다. 이렇게 되
면 중도가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습니다. 첫 번째 시기와 두 번
째 시기에서는 유(有)와 공(空)을 각각 집착하여 공(空)과 유(有)가 완
전히 상통하지 못했지만, 공견과 유견을 다 버려놓고 보면 진제 중
에 속제가 있고 속제 중에 진제가 있으며, 공 가운데 유가 있고 유
가운데 공이 있어 서로 상즉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상에 집착하는 것으로, 천태종이나 화엄종과 같이 무애원
융한 이론 전개는 되지 못한다고 나중에 현수에게 공격 받게 됩
니다... 법상종에서 주장하는 것은 상세히 검토해 보면 화엄종이
나 천태종에서 말하는 상즉상입하는 원융무애한 교리와는 거리
가 멉니다. 그리하여 실질적인 중도가 아니고 중간 입장이 되어버
려 중도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법상종에서 주장하는 제
3시, 즉 소승의 유(有)와 반야의 공(空)이 상즉하는 것을 설할 때,
자기네는 공(空) 가운데 유(有)가 있고 유(有) 가운데 공(空)이 있다
고 말하지만, 화엄종이나 천태종에서 말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37)
라고 하여 유식의 삼시교판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렇지만 유식의 입장
37) 퇴옹성철(2014), 중권 299-300. 『성유식론술기』(T43, 229c20), “如來爲除此空有執. 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