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2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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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 『퇴옹학보』 제17집
각성중도로 설명하자면, 원성실성의 불변은 비유이고 수연은 현실적으
로 비무이기 때문에 비유비무의 중도이다. 그러므로 원성실성 하나로
중도가 성립한다. 의타기성의 사유(似有)는 비무이고, 무성은 비유이다.
이것도 비유비무가 성립하여 중도가 성립한다. 변계소집성의 정유는 비
무이고, 이무는 비유이다. 이것도 비유비무가 되어 중도가 성립한다. 즉
삼성이 각각 중도를 이루는 삼성각성중도이다. 삼성대망중도는 삼성을
서로 합해서 서로 바라보고 중도를 이루는 것이다. 변계소집성의 정유
와 이무는 망정이지만 이치가 없기 때문에 비유이고, 의타기성의 사유
와 무정 및 원성실성의 불변과 수연 즉 진공묘유는 비무이다. 그래서 변
계소집성은 비유가 되고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은 비무가 되어 중도가 된
다. 이것을 삼성대망중도라고 한다.
그렇지만 성철은 “유식의 중도설은 유가 곧 무이고 무가 곧 유라는 것
은 성립되는데, 화엄종에서 말하는 ‘사사무애’와 같은 ‘일즉일체’ ‘일체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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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융통적 차원에서는 이르지 못합니다.” 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의타기성[연기적 존재]을 마치 실체가 있다고 집착하는 것이 변
계소집성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연기적 존재[의타기성]라고 깨닫는 것이
바로 원성실성이다. 그러므로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의 관계는
다르지도 않고[非異], 다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非不異] 왜냐하면 현실에
술에서 말하는 삼성설만큼 원융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현수가 설하는
삼성설은 유식종의 삼성설보다 융통하게 발전시킨 것으로 본래 유식종의 삼성설과 완전
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융한 중도의 사상을 밝히는 데 있어서는 이 설이 보다 더
적합하므로 이것을 택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48) 퇴옹성철(2014), 중권 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