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3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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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에 나타난 퇴옹 성철의 유식사상 • 123
서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은 다르다.[非不異] 다른 것에 의존해
서 존재하는 것은 연기적 존재[의타기성]이기 때문이다. 연기적 존재는 생
기, 유지, 변화, 소멸하는 성질을 가진 유위법이다. 이처럼 연기적 존재
는 자성이 없기 때문에 무상이고 공이다. 즉 원성실성[진여, 공]은 의타기
성과 다르다. 그러나 진리[공]의 입장에서 보면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은
다른 것이 아니다.[非異] 왜냐하면 진여, 공은 현실존재를 떠나 존재하
는 것이 아니며, 현실 그 자체가 바로 진여, 공, 열반이기 때문이다. 그
러므로 화엄경의 융통적 관계와 다르지 않다고 필자는 생각한다.(김명우,
2011)
그렇지만 성철은 법상종의 중도사상은 완전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면서,
철저하게 화엄종의 입장에서 중도사상을 천명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
까? 최원섭은 “『백일법문』의 특성은 상권 제3부 「근본불교사상」에서도
드러난다. 『백일법문』에서 말하는 석존이 한문 문헌 중심의 불교에서 이
해한 석존인 이상 『백일법문』의 ‘근본불교’ 역시 인도에서 처음 발생했다
는 의미의 ‘근본’이라기보다는 『화엄경』을 최초로 설하여 깨달음을 강조
한다는 의미의 ‘근본’에 가깝다. 바꾸어 말하자면 한문 문헌 중심의 불
49)
교에서 이해한 인도불교에 가까운 것이다.” 라고 한 것처럼, 성철은 유
식의 중도사상도 한역문헌을 기초로 중국에서 성립한 화엄종의 중도사
50)
상의 입장 에서 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49) 최원섭(2015), 43.
50) 성철은 『백일법문(개정증보판)』(상권, 33)에서 “여러 가지 교(敎) 가운데 제일 높은 가르침
이 화엄종이라는 것은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듯이, 『백일법문』은 사상
적으로 화엄사상을 중심에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