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5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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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에 나타난 퇴옹 성철의 유식사상 • 145
온론』 111) , 『유식삼십송석』 112) 및 『집론』에서는 “원하든 사물[대상], 그것
들에 강하게 이끌여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이며, 근[정진]의 의지처이
113)
다.” 라고 정의한다. 즉 좋아하는 것을 강하게 끌어서 희망하는 것이
라고 한다. 지욱도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희구하고 바라는 것[希求冀望]
을 본성으로 하고, 정근은 이것[욕]에 의지하여 생기는 것 114) 을 작용으
115)
로 한다.” 라고 주석한다. 특히 지욱은 『대승오온론』, 『집론』, 『성유식
론』에서 정의한 ‘희망(希望, abhilāṣa)’이라는 말을 ‘희구기망(希求冀望)’으로
111) 한역: “애락하는 것[可愛事]에 대해 희망하는 것을 본성으로 하는 것이다.”(『대승오온론』
(T31, 848c14-15), “謂於可愛事希望爲性.”)
범본: “바라는 것들[可愛]에 대해 열망하는 것[희망]이다.”(abhiprete vastuny
abhilāṣaḥ//Li and Steinkellner, 5, 8)
112) tatra chando 'bhiprete vastuṇyabhilāṣaḥ/abhiprete vastunyabhilāṣa iti
pratiniyataviṣayatvaṃ jñāpitaṃ bhavati/ anabhiprete chandābhāvāt/darśana
śravaṇādikrtyaviṣayatvena yad abhimataṃ vastu tad abhipretam/ tatra
darśanaśravaṇādiprāthanā chandaḥ/sa ca vīryārambhasaṃniśrayadānakar
makaḥ//(Lévi, 25, 22)
113) īpsite-vastuṇi tattadupasaṃhatā karttŗkāmatā/vīryā[rambha]
sanniśrayadānakarmkaḥ//(Gokhale, 16, 1-2) 한역: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끌
여[引發] 희망을 짓는 것을 본질로 한다. 정근(正勤)의 의지를 작용으로 삼는다.”(『집론』
(T31, 664a27-29), “謂於所樂事彼彼引發所作希望爲體. 正勤所依爲業.”)
114) 욕을 ‘근의 의지처’라고 정의한다. 정근(精勤) 또는 근(勤, vīrya)이란 선을 닦고 악을 끊
는 것에 노력[정진]하는 용감한 마음작용[勇猛心]이다. 그렇지만 근[정근]은 ‘노력’의 의
미이기 때문에, 노력하는 그 자체는 선악 어느 쪽도 아니다. 게다가 범어 ‘찬다(chanda)’
를 현장 스님이 욕(欲)이라고 한역했기 때문에 인간이 버려야 할 욕망이나 욕구로 생각
하기 쉽지만, 사실 희망[욕]은 선법욕[善法欲, 좋은 바람]과 불선욕[不善欲, 나쁜 바람]
의 양쪽으로 다 작용한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선법욕으로 작용할 수 있게 부단한 수
행이 필요한 것이다. 그 노력은 붓다의 가르침이나 진리 추구로 향해야 한다는 것을 말
한다. 그러므로 욕은 용맹하게 노력하는 실천수행의 근거가 되는 아주 중요한 마음작용
[심소]라고 할 수 있다.(김명우, 2020, 17)
115) 직해』(X48, 342c15), “於所樂境希求冀望. 以爲體性. 精勤依此而生. 以爲業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