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8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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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 『퇴옹학보』 제17집




            없는 것[不可改轉]     124) 을 작용으로 삼는다.”   125) 고 하여, ‘인지’를 인가임지

            (印可任持), ‘불가개전’을 ‘불가이타연인유개전(不可以他緣引誘改轉)’으로 풀어
            서 주석한다. 그리고 다른 주석서에는 ‘인전’이라고 주석하지만, 지욱은

            ‘개전’으로 바꾸어 주석한다. 둘 다 ‘생각을 바꾸거나 뒤집는다’는 의미

            로 큰 차이가 없다.
            한편 감산은 “해란 승해[뛰어난 이해]이다. 이른바 결정된 대상[境決定]에

            대해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다.”                    126) 라고
            주석한다.

            이 주석을 이어받아 성철은 ‘해[승해]’를 ‘수승한 지해’(勝解)’             127) 라고 정의





                『
            124)  성유식론』에서는 인(印)이란 ‘확실하게’, 지(持)란 ‘파악하다’는 뜻이라고 주석한다. 그러
                므로 인지란 ‘확실하게 파악하다’, 즉 ‘A를 A라고 확실하게 마음속에 새겨서[인각印刻]
                결정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승해, 즉 ‘뛰어난 이해’라고 하는 것이다. 필
                자는 ‘인지’를 마음속에 분명히 도장(새겨)을 찍어 그것을 보존·유지한다는 뜻으로 해석
                했다. 그리고 인지를 인가(印可)·인해(印解)·인순(印順)과 동의어로 사용한다. 왜냐하면
                『성유식론술기』에서 “인순은 즉 승해이다. 저것을 새기고[印] 순응하기[順] 때문이다”(『성
                유식론술기』(T43, 435a)라고 주석하기 때문이다. 지욱은 『성유식론』의 주석 내용을 이
                                   ‘
                어받아 ‘인(印)’을 ‘인가(印可)’·지(持)’를 ‘임지(任持, 마음에 지니는 것)’라고 주석한다. 즉
                인지(印持)를 ‘의심하지 않고[유예] 인정하고서 마음속에 지녀[새겨] 잊지 않는 것’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그리고 ‘불가인전(不可改轉)’을 다른 조건[他緣]에 이끌리고[引] 유혹되어
                [誘] <생각을> 바꾸거나[改] 변화하지[轉] 않는 것[不可]이라고 주석한다. 왜냐하면 개전
                (改轉) 또는 인전(引轉)이란 ‘생각을 바꾸거나 뒤집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즉 어제는
                A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B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이 반론을 제기하면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을 버리거나 바꾸는 것을 말한다.(김명우,
                2020, 15)
            125)  직해』(X48, 342c16), “於決定非猶豫境. 印可任持. 而爲體性. 不可以他緣引誘改轉. 而
                『
                爲業用.”
                『
            126)  백법논의』(X48, 309b29), “解者. 勝解. 謂於境決定. 知其可作. 不能已也.”
            127)  퇴옹성철(2014), 중권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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