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8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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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 『퇴옹학보』 제17집




               이것은 단순히 두 사람 사이의 논쟁으로서만이 아니라, 이후 양명학

            의 개성적 전개의 커다란 윤곽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한 가치가 있다. 아울러 선종(禪宗)의 돈오와 점오의 논의가 유가적으로

            변용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논쟁의 내용이 ‘본체’(양지)에 중점을 둘 것인가, 아니면 본체에 온전히
            도달하기 위한 ‘공부’에 중점을 둘 것인가 하는 점이다. 본체에 중점을

            둔 왕기의 ‘사무설’(四無說)과 공부에 중점을 둔 전덕홍의 ‘사유설’(四有說)
                       16)
            이 대립한다.  왕양명은 마음의 본체를 ‘무선무악’이라 보고 있다. 무
            선무악이란 마음의 본래 모습[本體]은 선으로도 악으로도 규정할 수 없

            는, 선악무구분의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왕양명은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은 ‘리’(理)의 고요함이고, 선도 있고 악도 있는 것은 ‘기’(氣)의 움

            직임이다. ‘기’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으면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이것이

            바로 지극한 선이다.”[無善無惡者理之靜, 有善有惡者氣之動, 不動於氣, 卽無善無
                                                                       17)
            惡, 是謂至善]”라고 하여, 마음의 본체를 ‘지선’(至善)이라 규정함으로써
            유가의 성선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음의 본체를 ‘무선무




               去惡功夫, 只去懸空想箇本體, 一切事爲, 俱不着實, 不過養成一箇虛寂. 此箇病痛不是小
               小, 不可不早說破.” 是日德洪·汝中俱有省.
            16)  여기서 사용하는 ‘사유설’(四有說), ‘사무설’(四無說) 또는 ‘유’(有), ‘무’(無)라는 말은 『龍溪
               集』 권1, 「天泉證道紀」에 나오는 용어임을 밝혀둔다.
               「
            17)  傳習錄」上에는 이렇게 있다.
               설간이 꽃밭의 풀을 뽑으면서 여쭈었다. “세상에서 어찌 선(善)은 기르기가 어렵고, 악(惡)
               은 제거하기 어렵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르지도 말고, 제거하지도 않았을 뿐이다.”
               조금 있다가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선악을 보는 것은 모두 사사로운 마음으로[軀殼] 생각
               을 일으킨 것이므로 곧 잘못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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