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1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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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王陽明)과 퇴옹(退翁)의 심성론·수행론 비교  • 211




               악’이라고 한 것과 이 지선을 합체해보면 왕양명은 유가적 선악 관념을

               부정도 일탈도 하지 않은 그 극한선을 밟고 서서, ‘심(心), 의(意), 지(知),
               물(物)’의 네 구를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본체를 ‘지선’(至善)으로

               도 규정함으로써 유가의 성선론적 입장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무선무

               악이라는 마음의 본체에 대한 확신과 믿음 또한 높아질 경우 상황은 달
               라진다. 다시 말해서 유가의 성선론을 ‘무선무악’의 심체(心體)로써 극한

               까지 밀고 나가면, 자아를 무한 긍정하게 되고, 그 결과 도덕심의 자유
               로운 구가도 가능하겠으나 자아의 자연인 욕망도 무한 긍정할 수 있게

               된다. 이 길이 바로 양명학의 진보적 흐름(이른바 좌파)으로 본체=공부이





                 理, 是天理合如此, 本無私意作好作惡.” 曰, “如好好色, 如惡惡臭, 安得非意?” 曰, “卻是
                 誠意, 不是私意. 誠意只是循天理. 雖是循天理, 亦着不得一分意. 故有所忿懥好樂, 則不
                 得其正. 須是廓然大公, 方是心之本體. 知此, 卽知未發之中.” 伯生曰, “先生云‘草有妨礙,
                 理亦宜去’. 緣何又是軀殼起念?” 曰, “此須汝心自體當. 汝要去草, 是甚麽心? 周茂叔窓前
                 草不除, 是甚麽心?”]

                 또 말씀하시기를, “고자의 병의 근원은 ‘본성에는 선(善)도 없고 불선(不善)도 없다’는 것으
                 로부터 드러난다. 본성은 선도 없고 불선도 없으므로 비록 그와 같이 말하더라도 큰 잘못
                 은 없다. 그러나 고자는 고집스럽게 확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선도 없고 불선도 없는 하
                 나의 본성이 안에 있게 되었다. 또한 선이 있고 악이 있다는 것을 사물에 감촉하는데서 보
                 았기 때문에 하나의 사물이 밖에 있게 되었다. 따라서 본성과 사물을 두 가지 측면으로
                 여겨서 잘못을 범하게 되었다. 선도 없고 불선도 없는 것은 본성이 원래 이와 같은 것이다.
                 깨달았을 때는 오직 이 한 구절이면 충분하며, 다시 안팎의 사이가 없다. 고자가 하나의
                 본성이 안에 있다고 보고, 하나의 사물이 밖에 있다고 보는 것은 그가 본성에 대해 아직
                 투철하게 이해하지 못한 점이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又曰, “告子病源從‘性無善無不善’上見來. 性無善無不善, 雖如此說, 亦無大差. 但告子執
                 定看了, 便有個無善無不善的性在內. 有善有惡又在物感上看, 便有個物在外. 却做兩邊看
                 了, 便會差. 無善無不善, 性原是如此, 悟得及時, 只此一句便盡了, 更無有內外之間. 告子見
                 一個性在內, 見一個物在外, 便見他於性有未透徹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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