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9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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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王陽明)과 퇴옹(退翁)의 심성론·수행론 비교 • 209
설간이 이해를 하지 못하자 다시 말씀하셨다. “천지의 생명 의지는 꽃이나 풀이나 한가지
인데 어찌 선악의 구분이 있겠느냐? 네가 꽃을 보고자 하기 때문에 꽃을 선한 것으로 생
각하고, 풀을 악한[惡]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필요로 할 때는 풀도 선한 것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선악은 모두 네 마음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서 생겨난 것이니, 잘못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설간이 여쭈었다. “그렇다면 선도 없고 악도 없다는 것입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은 ‘리’(理)의 고요함이고, 선도 있고 악도 있는 것은 ‘기’(氣)의 움
직임이다. ‘기’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으면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이것이 바로 지극한 선이
다.”
설간이 여쭈었다. “불교 역시 선도 없고 악도 없는데, 어떻게 다릅니까?” 선생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불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는 것에 집착하여 일절(一切) 상관하지 않기 때문
에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 성인에게 선도 없고 악도 없다는 것은 단지 일부러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아서 ‘기’(氣)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선왕의 도(道)를 따라 그 법도
에 합치하니 곧 저절로 천리를 따르게 되고, ‘천지의 도를 재단하고 천지의 마땅함[宜]을
돕게 된다.’”
설간이 여쭈었다. “풀이 이미 나쁜 것이 아니라면 풀을 제거할 필요가 없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오히려 불교나 노자의 생각이다. 풀이 만약 장애가 된
다면 뽑아 버린들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선간이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또한 일부러 좋아하고 일부러 싫어하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부러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것은 전혀 좋아하거나 싫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지각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 않는 것은 다만 좋아
하고 싫어함이 한결 같이 천리에 따른다는 것이고, 자기의사를 조금이라도 덧붙이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으면 곧 좋아하고 싫어한 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설간이 여쭈었다. “풀을 뽑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한결 같이 천리를 따르고 자기 의사를
덧붙이지 않는 것입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풀이 방해가 된다면 마땅히 뽑아내는 것이 이치이므로, 그것
을 뽑아낼 뿐이다. 우연히 뽑아내지 못했더라도 역시 마음에 거리낄 것이 없다. 만약 조금
이라도 자기 생각[意思]을 덧붙인다면 마음의 본체[心體]에 누를 끼치게 되고, 기운을 움
직이는 곳이 많이 생길 것이다.”
설간이 여쭈었다. “그렇다면 선과 악은 사물에 전혀 있지 않은 것입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단지 네 마음에 있을 뿐이다. ‘리’를 따른 것이 바로 선이고,
‘기’에 움직이는 것이 바로 악이다.”
설간이 여쭈었다. “결국 사물 자체에는 선악이 없는 것입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에서 그와 같으니, 사물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세상의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