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7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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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王陽明)과 퇴옹(退翁)의 심성론·수행론 비교  • 217




                    수가 하느님의 계시에 의해서 성경에 의지하여 세웠으니, 절대신의
                    계시가 그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많은 지식을 얻거
                    나 절대신의 계시에 의지해서 세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자성(自性) 즉 일체만법의 자성을 바로 깨쳐서 부처가 되었고, 바로
                    거기서 불교가 출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불교가 다른 종교와 근
                    본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즉 절대신 같은 것을 전제로 하지 않고
                    오직 일체 만법의 자성을 근본으로 삼고, 이것을 바로 깨치도록 이
                    끌어주는 종교는 불교밖에 없습니다.

                    불교라고 하면 성불(成佛)이 목적인데, 성불을 하려면 언어와 문자
                    로는 안 됩니다. (중략) 그렇다면 팔만대장경은 왜 필요한가? 금강산
                    이 천하에 유명하고 좋다지만, 선전문도 필요하고 소개문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금강산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금강산에
                    대해서 좋은 사진이라든가 비경(秘境)이라든가 설명을 붙여서 천하
                    에 펼쳐놓아야 합니다. 팔만대장경 즉 언어와 문자는 우리가 성불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노정기(路程記)입니다. (중략) 우리는 팔만대
                    장경이라는 노정기에 의지하여 실제로 길을 가서 부처가 되어야 합

                    니다. 서울이 좋다고 서울 안내서만 보고 앉아서 설명을 듣고 연구
                    를 하면 서울은 영영 못보고 맙니다. (중략) 팔만대장경이라는 언어
                    와 문자가 결국 서울 가는 노정기인줄만 분명히 안다면, 이것도 꼭

                    필요합니다. (중략)
                    이렇게 말하면 선(禪)과 교(敎)는 다르니, 교에서도 그렇게 말하는지
                    의심이 갈 것입니다. 그리고 선종(禪宗)은 문자를 배격하고 교종(敎宗)
                    은 문자를 근본적으로 숭상하므로 교종은 선종과 정반대의 입장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교종을 전혀 모르는 사람

                    입니다. 교종도 부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깨치는 것을 근본으로
                    삼습니다. 안내 책자나 소개서만 가지고 평생을 살라는 말은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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