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9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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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王陽明)과 퇴옹(退翁)의 심성론·수행론 비교 • 229
는 주자학적인 맥락에서 이해할만한 이분법적인 엄격성, 경건성을 가지
고 있다고 본다. 일찍이 퇴옹이 ‘가야산 호랑이’로 통했고, 자신의 장좌
불와나 신도들에게 권장했던 3천배에서 느낄 수 있는 수행의 태도는 양
명학적이라기 보다 정주학적 성격이라 할만하다.
계속해서 퇴옹은 무진장의 지혜덕상에 이르는 방법은 언어문자에 의
한 것이 아님을 『백일법문』에서 이야기한다. 즉 <2. 문자없는 경>에서
만해 한용운의 『채근담』 강의 중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인용한다: “나
에게 책이 있는데/종이나 먹을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니다./펼치면 한 글
자도 없는데/항상 큰 광명을 얻는다(我有一卷經하니 不因紙墨成이라/展開無
一字호대 常放大光明이라)”[『精選講義 菜根譚』‘槪論’]. 그 다음 퇴옹은 “부처님과
똑 같은 지혜 덕상을 가졌다는 이 글자 없는 경, 말하자면 자아경(自我
經), 곧 자기 마음 가운데 있는 경을 분명히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라
고 말한다. 이어서 <3. 언어문자에 대한 비판> 부분에서 『장자(莊子)』 외
편의 ‘천도(天道)’에 나오는 제나라 환공(桓公)과 수레 바뀌 깎는 장인 사
람 윤편(輪扁)과의 대화에서 “언어 문자는 이미 죽은 옛 사람[故人]의 찌
꺼기”라는 구절을 인용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이렇듯 불교에서만 언어
문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외교(外敎)에서도 깊이 생각해본 사람
은 대개 언어와 문자의 폐단을 지적해서 배격합니다.” 이어서 『달마혈맥
론(達磨血脈論)』의 “널리 배우고 지혜가 많으면 자성이 도리어 어두워진
다.[廣學多智하면 神識이 轉暗이라]”를 인용한다. 아울러 노자 『도덕경(道德
經)』48장(왕필본)의 “배움을 위해서는 날마다 더하고, 도를 위해서는 날
마다 던다. 덜고 또 덜어서 무위에 이르니, 무위이면서 못하는 것이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