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8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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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 『퇴옹학보』 제17집
바로 알 때에, 이것이 만법의 근본이라는 말입니다. 우주 만유의
근본이 전부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덜어내 버리고
밥그릇 하나 들고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며 밥 한 술 구걸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가 부자인 줄 모르고 구걸하러 다니는 어리석은 사
람과 같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언어문자에 집착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제 마음
의 창고만 열면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써도 다함이 없고 일체
중생에게 다 보시를 해도 남는데, 그 무진보고(無盡寶庫)를 놔두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얻어먹는 거지노릇이나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니 누구든지 하루바삐 마음을 돌이켜 방편설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속의 무진보고를 계발해야 합니다. 공부를 하여 그 방법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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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보물 창고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퇴옹은 양명의 시에서 “자기 집의 무진장 보화를 버리고, 남의 집을
돌며 밥그릇 들고 거지 노릇 하는구나.”라는 말에 적극 동의한다. 아울
러 ‘마음 속의 무진보고’를 버리고 ‘언어문자=방편에 집착’하는 거지노
릇이나 해서야 되겠냐고 되묻는다.
양명은 양지가 시비선악의 준칙-치침이니 개개인의 양지가 내리는
판단대로 행하면 된다고 했다. 결국 기성의 권위-표준-전통은 나라는
주체의 흔적-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래서「뭇 성현이라는 권위도 ‘양지’의
59)
그림자이다. 양지가 곧 나의 스승이다(千聖皆過影, 良知乃吾師)」 라고 단
언한다. 양지가 나의 스승[師]이라면 전통문화와 교육의 지침인 텍스트
58) 퇴옹성철(2019), 64-67..
『
59) 陽明集』卷20, 「兩廣詩」「長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