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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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퇴옹학보』 제17집







                 [13] “그런데 이 팔정도가 방법론인가 목적론인가 하는 논란이 있습
                 니다. … 팔정도가 구경 목표로 향하는 방법론이지 구경 목표인

                 목적론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것은 중도의 근본
                 뜻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부처님은 ‘중도를 정등각했다.’고 하
                 셨지, ‘중도를 닦아서 정등각했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궁극적으로 중도를 바로 깨쳤고, 그 사람이 부처이므로 중도의 내
                 용인 팔정도는 목적론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팔정도는 이와 같이
                 목적론적  구경론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35)
                 [14] “지금까지 계속 중도를 말했다고 해서 말만 따라가면 실제 중
                 도는 모르고 맙니다. 밥 이야기를 천년만년 해 봤자 배가 부르지

                 않듯이 아무리 중도를 이야기해도 입만 아프고 귀만 아프지 중도
                 는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입으로는
                 중도를 말하면서 마음속에 중도를 깨치지 못했다면 이 사람은 미

                 친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음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며 부처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고?’ 하는 화두를 늘 들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그렇
                 지 않고 중도 이야기만 듣다가는 개가 신주를 물어가 버립니다.”               36)
                 [15] “중도설은 양변에 집착하지 말라는 기본적이고 간단한 형식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집착하지 말라는 그 양변은 이론적인 사항이

                 아니라 수행하여 깨쳐야 할 실천적인 사항입니다. 이처럼 최초의
                 중도설은 수행자의 실천에 관계하여 제시되었습니다.”              37)






            35) 퇴옹(2014), 150(상권).
            36) 퇴옹(2014), 139(상권).
            37) 퇴옹(2014), 143(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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