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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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 『퇴옹학보』 제17집
으므로 동일한 의미이다. 이 무상정각인 정변지는 불교의 최후 구경목
55)
표이다. 견성 을 하면 정각을 얻고 정각을 얻으면 견성을 한다 함은,
견성 즉 정각이요 정각 즉 견성임을 선설(宣說)한 것이다. 그러므로 견성
56)
이 즉 무상정각이며 성불이다.” 는 퇴옹의 지적도 당연히 성립된다. 그
러면 중도(中道), 즉 공성(空性)을 누구나 ‘바로 친히 깨달을’[現證] 수 있는
가? 깨칠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역시 『선문정로』에 답변이 있
다. 중요하므로, 길지만 읽을 필요가 있다.
[7] “【2-1】 일체 중생이 진여본성인 불성을 다 가지고 있어서, 불이
나 법이나 승이나 평등하여 추호도 증감차별이 없느니라. 一切衆
生이 悉有佛性하야 佛法僧에 無有差別이니라.(『大般涅槃經』 19, 『大正
藏』 12, p.730a) 일체중생이 구유(具有)한 진여본성은 제불의 과덕(果
德)을 원만구비(圓滿具備)하였으므로, 이를 불성·법성 또는 불심(佛
心)·불지(佛智) 등으로 부른다. 이 불성은 절대로 평등하여 무상극
과(無上極果)를 성취하여 광대무변한 지덕을 완구(完具)한 제불여래
나 극악중죄인 5역(逆) 10악(惡) 내지 일천제의 중생까지도 원만구
유(圓滿具有)하므로 여래와 중생의 차별이 없다. 그러므로 선근이 절
멸한 일천제도 불성만 정견(正見)하면 전부 성불하나니, 이것이 불
교의 생명이며 모든 종교가 추수(追隨)할 수 없는 가장 탁출(卓出)한
특색이다. … 선한 기미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극악한 단선근중생
(斷善根衆生)도 깨치면 곧 부처이다. 무엇을 깨친다는 말인가? 본래
‘
‘
55) 견성(見性)의 성(性)은 공성을 말하며, 견(見)은 ‘체득하다’·증득하다’·깨닫다’는 뜻이다.
‘본다’로 해석하면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56) 퇴옹(2007),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