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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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옹성철의 불학체계와 그 특징  • 49




               나 파고들면 무쇠로 만든 소의 피를 빨아 먹으려 덤벼드는 모기처럼 무

               기력해진다. 오히려 찌르는 침이 부러진다. 독을 발라 놓은 북[塗毒鼓]의
               소리를 들은 모든 사람들이 죽는 것처럼 『본지풍광』을 읽는 사람들은

               그 어려움에 다 혼절한다. 공안(公案), 송고(頌古), 염고(拈古) 등 인용문

               자체의 내용도 쉽지 않다. 가르침을 전하지 않기 위해 쓴 책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퇴옹은 「덕산탁발화」의 ‘수시’에서 외쳤다.




                    [1] “이렇고 이러하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해와 달이 캄캄하도다.
                    이렇지 않고 이렇지 않으니

                    까마귀 날고 토끼 달리며 가을 국화 누렇도다.
                    기왓장 부스러기마다 광명이 나고
                    진금(眞金)이 문득 빛을 잃으니

                    누른 머리 부처는 삼천리 밖으로 물러서고
                    푸른 눈 달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 도리를 알면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거꾸러지며
                    이 도리를 알지 못하면 삼두육비(三頭六臂)이니 어떠한가?
                    붉은 노을은 푸른 바다를 뚫고

                    눈부신 해는 수미산을 도는 도다.


                    여기에서 정문(頂門)의 정안(正眼)을 갖추면 대장부의 할 일을 마쳤

                    으니
                    문득 부처와 조사의 전기대용(全機大用)을 보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시 두 번째 바가지의 더러운 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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