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퇴옹학보 제17집
P. 51
퇴옹성철의 불학체계와 그 특징 • 51
사」에 따르면 ‘의의’는 ‘이리 저리 따지고 헤아리는’ 것이다.
그런데 임제는 헤아리고 따지는 수행자를 곧바로 때려버렸다. 헤아리
고 생각하는 길을 끊어 버린 바로 그 순간으로 수행자를 몰아넣는다.
헤아리고 따져보고 말하고 행동하라는 『주역』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다.
붓다의 가르침은 신비한 것도, 말로 알 수 있는 것도, 생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생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것임’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수행자를 궁벽한 상황에 넣고자
때리듯이 ‘인용문 [1]’도 독자를 막다른 골목으로 유도한다. 아니 토끼
몰이 하듯이 몰아 부친다. 그래도 한 번 헤아려 보자.
“①이렇고 이러하니 ②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③해와 달이
캄캄하도다.
④이렇지 않고 이렇지 않으니 ⑤까마귀 날고 토끼 달리며 ⑥가을
국화 누렇도다.”
①과 ④가 대응하고, ②와 ⑤가 상응하고, ③과 ⑥이 짝이 된다. ‘이
렇고 이러하니’와 ‘이렇지 않고 이렇지 않으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데 ‘까마귀는 날고 토끼는 달리며’; ‘해와 달이 캄캄’한데 ‘가을
국화는 누렇다.’ 서로 상반된다. 이래도 아니고 저래도 아닌 것이 아니라
‘이런데 이렇고, 이렇지 않으니 이렇지 않다’는 식이다. ‘임제와 수행자의
대화’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헤아리거나 머뭇거리지 못하게 하는 방
식은 비슷하다. 말과 생각의 길을 끊어 진퇴양난, 즉 ‘딜레마’에 빠트린